요망한 홍시 빙수로 물 건너간 비건 도전. Ft. 유제품 끊기
저는 캣 시터를 하며 한 달간 머물던 스위스에서 채식을 결심하고(세 번째 채식 시도)
Pesco-Vegetarian(포유류, 조류는 먹지 않고 어류,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채식주의자)이 되어 3년 3개월 동안 실천해오다 한 달 전 드디어 순수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류, 유제품, 식품첨가물이 든 가공식품도 독하게 마음먹고 끊었으니 엄격한 채식가가 된 것입니다.
모든 '베지테리언'의 종착역인 '비건'이 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에 기분이 날아오를 것 같고, 환경보호와 동물의 권리 지키기 그리고 건강까지 이롭게 할 수 있어 모든 면에서 훌륭한 완전 채식을 하게 돼 제 자신이 더욱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주 전, 친구가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오기로 해 잠시 얼굴이나 볼 겸 서귀포 바닷가에 자리한 분위기 좋은 전통 찻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진으로 미리 본 그 집의 여름 명물 홍시 빙수를 떠올리며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그 빙수 진짜 맛있어 보이던데.. 주문할 때 연유는 빼 달라고 해야지. 그럼 비건 팥빙수가 되니까~...
음... 맛은 보장 못하겠지만."
달콤하고 입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하얀 연유 없이 이도 저도 아닌 밍밍하고 텁텁할 것 같은 빙수 맛을 상상해보니 살짝 긴장이 됐지만 3주나 비건이 되기 위해 자연 식물식을 실천해놓고 이제 와서 팥빙수 하나에 굳은 결심을 무너뜨릴 순 없었어요. 그토록 좋아했던 연유마저 외면하기로 한 제 의지에 놀라기도 했지요.
25년 지기 친구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친구는 아직 도착 전이었어요. 따사로운 초여름의 오후 햇살을 받으며 40분을 걸어온 후라 꽤 목이 탔던 저는 물을 한잔 마시고 주문에 들어갔어요.
"홍시 빙수 한 개 주세요. 연유는 빼주세요."
호기롭게 주문을 하자 직원분이 "연유는 따로 드릴까요?"라고 물으셨습니다. 혹시라도 친구가 먹을 수도 있어 그렇게 해달라고 답한 뒤 계산을 하고 자리로 돌아와 친구에게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책 "호르몬과 맛있는 것들의 비밀"(안병수 저. 이 책 읽고 가공식품을 싹 끊으니 입맛이 완전히 돌아옴. 날깻잎 한장 입에 물고 맛있어서 할렐루야 외칠 정도로 입맛이 살아남)을 읽으며 더위에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드디어 빙수가 나왔어요.
나무쟁반에 담겨 나온 홍시 빙수는 고급스러운 유기그릇의 황금빛과 어우러져 반짝거리며 고운 자태로 꼬리 아홉 달린 여우처럼 사람을 홀리기 시작했어요. 홍시 위에 살포시 얹어진 애플민트 이파리는 초여름의 연둣빛 풋사과처럼 상큼해 보였고, 껍질을 벗긴 홍시의 주황색 속살은 어서 한입 먹지 않으면 난리가 날 것처럼 저를 애태우며 유혹했습니다. 소녀의 볼처럼 빨간 홍시 아래 듬뿍 얹어진 다갈색 팥과 썰은 곶감, 그리고 슬라이스 된 아몬드의 향연이란...!
아밀라아제의 활성으로 입안에 홍수가 난 듯 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동시에 사진을 찍고 금빛 놋수저를 든 순간 저는 보았어요. 하얗다 못해 푸르게 빛나는 눈꽃처럼 곱게 갈린 얼음을요. 냄새를 맡고 맛을 보니 우유를 얼려 갈아 만든 얼음이 틀림없었어요.
'유제품도 끊어서 연유도 빼 달라고 했건만 복병이 있었구나!'
한국에서 빙수 먹은 지 하도 오래돼 빙수에 우유를 넣는다는 걸 깜빡한 거예요. 3년 전 육식을 멈추며 홍차에 넣어 즐겨 마시던 우유도 멀리하긴 했지만(두유나 아몬드 우유로 대체) 버터, 아이스크림, 치즈, 요구르트, 치즈케이크, 푸딩, 밀크 초콜릿, 빵 등의 유제품을 끊기란 어지간히 힘든 게 아니었어요. 특히 제가 머물던 영국은 유제품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맛이 좋아 즐겨 먹었고, 육식을 안 하니 영양결핍이 될까 봐 더 가열차게 먹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공룡 피부, 오이 껍데기 같던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드름은 툭하면 올라왔고, 근질거려서 매일 긁던 원인모를 피부염은 늘 저를 괴롭혀 왔던 거예요.
그런 저의 유제품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잡아준 분이 계십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주치의를 역임했던 존 맥두걸 박사의 책 '존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에서 아래의 글을 발췌합니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유제품, 그리고 각종 동물성 기름 및 식물성 기름을 치워라. 이 음식들은 모두 고지방 식품이다. 거의 대부분 탄수화물이 없다. 우유에 락토즈(젖당) Lactose라는 탄수화물이 약간 있지만 인간은 이것을 소화할 수 없다. 또한 우유에 든 단백질은 뼈의 손상을 가져와 골다공증을 일으키고 아토피와 같은 각종 알레르기의 원인이 된다. 동물성 단백질은 배설할 때 칼슘과 결합해서 배설되기 때문에 칼슘 결핍을 가져온다. 동물성 식품에는 포만감을 주는 식이섬유가 전혀 없다. 혈당과 인슐린을 조절하고 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식이섬유가 전혀, 그러니까, 0.0001%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동물성 식품에는 또한 콜레스테롤이 지나치게 많고, 몸에 필수적인 비타민과 미네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단백질 또한 위험할 정도로 많아서 신장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신장결석과 관절염 등이다.
우유 및 유제품 소비가 가장 높은 나라인 미국의 엉치뼈 골절과 골다공증 환자의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정입니다. 낙농협회와 대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 지원이나 로비 없이 연구한 정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우유 및 유제품이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귀국 후 유제품을 (영국보다 너무 비싸서) 잘 먹지 않았더니 6개월 동안 여드름이 한두 개 밖에 나지 않았어요. 늘 긁어대던 팔뚝의 원인모를 가려움증도 사라졌고요. 그런데 홍시 빙수를 먹고 바로 그날 밤, 6개월 만에 팔뚝을 벅벅 긁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안 먹던 우유를 먹고 바로 가려움증이 올라오다니 인체의 신비는 정말 너무나 놀라워요. 아마도 그 홍시 빙수가 제 생애 마지막 팥빙수가 되지 않을까요? 우유 얼음이 아닌 순수한 얼음을 갈아 넣은 빙수라면 모르겠지만요.
제주도에 오기 며칠 전 감기에 걸려 따뜻하고 걸쭉한 대추차를 시켜 마신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제 몸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왜 이렇게 말랐어?! 팔뚝살 다 어디 간 거야?"
푸짐한 살 깊숙이 파묻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팔뚝뼈가 채식을 하며 드디어 윤곽을 드러낸 것 입니다. 채식으로 온몸이 날씬해졌고, 꽉 끼던 청바지는 줄줄 흘러내려왔으며, 두 턱은 하나로 돌아왔어요. 텔레토비가 골룸이 된 격인가요?
6개월 전 귀국 후 이 친구를 7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하고 똑같지? 채식을 해서 그런가?"
맞아요. 채식은 노화 예방에도 좋고 사람을 젊게 만들어요. 겉모습뿐만 아니라 늘 밤에 한두 번씩 깨던 제가 요즘은 숙면을 취하고, 비만 오면 욱신거리던 무릎은 멀쩡해졌어요. 종종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심각했던 허리 통증도 사라졌습니다(3년 동안 해온 108배 덕분이기도 함). 앞으로도 제게 남아있는 만성질환(비염, 알레르기, 수전증, 안면홍조증)들을 자연식물식으로 다스려 볼 생각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보다 '정신적 청명함'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났으며 치매에 걸릴 확률도 50%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고 완전 채식가는 육식가에 비해 평균 15년 더 오래 산다는 독일의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시작은 어렵지만 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비건의 삶.
채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든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선지국과 보쌈, 순대에 열광하던 저같은 사람도 비건이 되었으니까요!
“People are the only animals that drink the milk of the mother of another species. All other animals stop drinking milk altogether after weaning. It is unnatural for a dog to nurse from a mother giraffe; it is just as unnatural for a human being to drink the milk of a cow.” -Michael Klaper
"인간은 다른 종의 모유를 먹는 유일한 동물이다. 모든 다른 동물들은 자라면서 젖을 뗀다. 엄마 기린의 젖을 개가 먹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사람이 소의 우유를 마시는 것 역시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 마이클 클라퍼
“Every time you drink a glass of milk or eat a piece of cheese, you harm a mother. Please go vegan.” -Gary L. Francione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치즈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당신은 한 어머니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젖소도 송아지의 어머니입니다. 송아지가 먹어야 할 모유를 사람이 먹죠.) 비건이 되세요." - 개리 프란시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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