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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Jun 17. 2022

그 모피옷 당장 갖다 버려!

영국 길거리에서 토끼 털옷 입고 걷다 참 교육당한 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합니다.


때는 2014년 겨울, 영국 브라이튼에서 그림 그리던 시절입니다. 오후 네시면 어두워지는 춥고 습한 겨울왕국에서 긴긴 겨울을 나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간 오리털 잠바와 두꺼운 모직코트를 입고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중 오리털 잠바는 의류회사에 다니던 지인이 디자이너 샘플 행사를 할 때 귀띔해줘 냅다 달려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모셔온 럭셔리한 오리털 잠바로 토끼털이 목 주변과 옷섶까지 이어져 장식된 모피옷이었어요. 수십만 원짜리 옷을 삼만 원에 사와 횡재했다 생각하고 겨울마다 아끼며 입으면서 옷이 참 가벼우면서 따뜻하고 장식된 토끼털이 부드럽고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그 털을 내주며 희생당한 토끼들과 오리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간과했던 무지한 인간이 저였습니다.


"노니, 그 옷에 붙은 거 진짜 동물 털이야? 그렇다면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그때 같은 집에 살던 프랑스인 플랫 메이트 아드리안이 제 옷을 보고는 경멸의 눈초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어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동시에 순간 들었던 생각은...


'돼지고기, 양고기는 물고 뜯고 씹는 인간이 뭐래? 웃기고 있네. 나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건 채식주의자뿐이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똑같은 것들끼리 아웅다웅한 거죠. 육식인한테서 저런 말을 듣다니 황당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개고기 먹는 한국인을 비난하지만 소고기는 주식으로 먹는 백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아드리안도 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프랑스 백인 요리사). 그런데 저도 달은 보지 않고 그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본 것이었어요. 모피 입은 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야행성이던 저는 작업실에서 밤늦게 까지 작업을 하다 30분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 오른쪽으로 바짝 뒤쫓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곧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제 귀에 대고 날 선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 털옷 당장 갖다 버렷!"


너무나도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영국 여자의 말투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잘 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습니다.


"뭐라고?"

"네가 입은 그 옷 토끼털이지? 당장 갖다 버리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입은 옷은 토끼 털옷이었으니까요. 내 몸뚱이 하나 따뜻하자고 수많은 동물들을 학대하고 희생해 만든 옷, 오리털도 깊숙이 감춰둔 한없이 부끄러운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모피옷을 휘두른 죽을죄를 졌다 해도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낯 모르는 여자로부터 받은 충격 또한 컸습니다.


"... Are you a vegetarian?"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당신 채식주의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은 고기를 매일 먹으면서 모피 입은 저를 비난하는 아드리안 같은 인지부조화 상태의 육식인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채식하는 사람의 비난은 감수하고 받아들이겠다 생각하며 물은 생뚱맞은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 당시 채식에 관심이 있었고, 토끼 털옷을 입고 있을지언정 고기를 끊으려고 한 달간 시도를 한번 한 적이 있었던 터라 채식주의자들을 경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혀는 고기 맛을 잊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동물의 불타는 사체를 탐하던 모순덩어리였지만 채식이 분명 모든 면에서 이로운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고는 있었어요.


"I am a vegan."


그녀는 비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 옷 갖다 버리라며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인간 때문에 억울한 희생을 당하는지 아냐면서 싸늘한 눈초리로 계속해서 호통을 쳤어요. 모르는 사람에게 호되게 혼나고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언젠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본 모피 소동이 떠올랐습니다. 나문희 여사께서 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나갔다가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에게 계란세례를 받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래, 냄새나는 날계란 안 맞은 게 어디야! 설교가 낫지. 암."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동물의 털이 달린 옷을 입는 제가 조금이라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 여인에게 고마웠습니다. 나를 깨닫게 해 주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 영적인 도우미, 내 성장의 메신저라고 여기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이 있어야 중도를 깨닫고 의식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법상 저 - '내 안에 삶의 나침반이 있다'에서)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살아있는 토끼와 오리에게서 털을 뽑아 옷, 이불등을 만든다고 합니다. 내 머리털 하나를 뽑혀도 아픈데 한번에 많은 양의 털을 산채로 뽑혀 피흘리고 비명지르다 죽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집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던 2015년 3월, 한국으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하나 둘 짐을 챙기고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버리다 대부분의 짐은 체리 티숍에 기부했습니다. 아끼고 아꼈지만 토끼털이 달려 입으면서도 마음이 영 불편했던 그 토끼털 잠바를 도네이션 하고 오는 길에 그 날서고 낯선 비건 영국 여자가 떠올랐습니다. 동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비건이 되고, 길거리에서 본 털옷 입은 무식한 동양 여자를 디스 하며 참 교육해준 그녀가..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4년 뒤 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토끼와 오리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려 본 그림입니다. 종이 위에 수채. 노니 그림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로 오셔서 구경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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