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이Noni Jan 21. 2021

뉴질랜드에서의 800불짜리 귀신의 집 체험

공포영화도 못 보는 초민감자가 그녀의 집에서 겪은 공포체험 두 달..

아주 오래전 할 일 없는 어느 주말 밤, 홀로 거실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TV 리모컨을 돌리다 우연히 그 유명한 '링'의 명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티비속에서 음기양양(?)하게 기어나오던 귀신의 시커먼 머리채와 소름 끼치는 팔뚝에 심장이 파지직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영화보다 심장마비로 저승 갈까 두려워 혼자 무서운 영화보기는 절대적으로 피하고 있습니다. 그저 영화인데 그걸 왜 못 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Empath라고 불리는 초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할게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못해 과도한 사람들을 ‘엠파스'(empath)라고 부른 이 용어는 초자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https://postshare.co.kr/archives/144422



저는 남다른 공감능력 때문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를 극복하려 고군분투 중이에요. 자극적이고 냉혹하고 민감성을 업신여기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민감한 나 자체를 받아들여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명상과 채식, 백팔배를 매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정신과 전문의인 주디스 올로프 박사에 따르면, 초민감자는 감정 이입이 지나쳐서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껴 고통받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무런 방어막 없이 타인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신체적 증상까지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수용하고 감정의 필터가 없어 쉽게 지치고 상처를 입는 것이라고 하네요. 모든 것을 지나칠 정도로 감지하고 타인과 나 사이를 막아주는 방어벽이 아주 낮다 보니 자주 과도한 자극을 받아 압도되고 기진맥진하거나 감정의 과부하에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지나친 공감능력을 지닌 초민감한 인간이 영화 보는 법


그래서 저는 공포영화를 일절 거부하고, 폭력성이 지나치거나 잔혹한 전쟁영화도 보고 나면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라 웬만하면 안보며 (좋아하는 휴 잭맨이 나온다는 '로건'을 집에서 보고 이틀 동안 한숨 쉬며 힘들게 보냈습니다), 밝고 재밌는 영화 위주로 보지만 슬픈 영화를 보면 온 나라를 잃은 것처럼 통곡해버려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레미제라블 보고 극장에서 오열). 어린이 관람가 영화 '라이언킹'을 볼 땐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오는 장면에 놀라 앉은자리에서 제자리 점프하며 팝콘 뿌리는 영화관 진상이기도 했습니다.


고작 네모난 화면에서 비치는 영상에도 감정 이입하며 괴성 지르고 유난 떠는 초민감한 사람이 실생활에선 어떨지 감이 오시죠? 용감한 척 십 년째 해외생활을 하고 있지만 실은 정말 겁도 많고 누구보다 예민한 제가 뉴질랜드에서 겪었던 기묘한 일화를 그 당시 기록해놓은 게 있어 풀어보려 하는데, 무서운 이야기 싫어하시는 분은 읽지 마시길 권해드려요. 저 같은 분이 읽고 힘들면 죄송하니까요.     



보헤미안 하우스에서 밤마다 들리던 노크소리


뉴질랜드 로토루아 아트빌리지에서 입주 화가로 그림 그리며 지낼 때의 일입니다. 첫 4주는 케이와 짐의 천국 같은 집에서 지내고 나머지 두 달 동안 머물 집이 필요해 수소 문중 브리짓이 자신의 집에 남는 방이 있다며 구경하러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로토루아 아트빌리지 앞에 자리한 나무에 손뜨개로 옷을 입힌 로토루아 주민들. 여긴 모두가 아티스트예요!

브리짓은 스튜디오 1에서, 저는 스튜디오 2에서 작업을 하며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동네에서 나름 알아주는 뉴질랜드 태생 아티스트인 브리짓은 예술가다운 불같은 성격에 저를 몇 번이나 넘어가게 한 유머감각을 겸비한 50대 초반의 매력적인 싱글레이디였습니다. 한마디로 엄청 기 세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죠.


시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깔끔히 정돈된 가든이 돋보이던 보헤미안 스타일의 작고 아담한 집이었고 아티스트의 집답게 여러 그림과 오래된 도자기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어요. 벽이 온통 붉은색으로 페인트 칠 되어 있던 빈방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이사를 결정했고 며칠 후 브리짓과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날로그 인간이었던 브리짓의 집에선 와이파이는 물론, 인터넷조차 되지 않았고 (2012년에 이럴 수가), 스마트폰이 없었던 또 다른 아날로그 인간인 저는 (2012년에 2G 폰 쓰던 원시인) 밤마다 영어공부를 하거나 거실에서 TV를 시청했는데, 이사온지 며칠 후 어느 저녁 브리짓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저 혼자 TV를 보고 있을 때였어요.


'똑 똑 똑 똑'


가만히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누가 와서 노크하는 줄 알고 현관문을 열자 아무도 없었고, 다시 TV를 보기 시작했지만 그 똑똑거리는 소리는 TV를 보는 내내 들리더니 밤새 이어졌고 저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브리짓에게 말하자 포섬(호주와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주머니쥐)이나 그냥 생쥐일 거라며 다락방부터 지하창고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아마도 집이 오래되고 낡아서 바람 때문에 나는 소리일 테니 걱정 말라며 아무렇지도 않아했어요.

그랬습니다.

그 집은 지은 지 50년이 넘었고, 커다란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트럭이라도 지나갈라치면 지진이 난 듯 온 집이 흔들려서 도자기 그릇들이 일제히 달그락 거릴 정도로 삭을 대로 삭은 묵은지 같은 컨디션이었던 것입니다.


마녀의 부엌 같았던 브리짓의 소박한 주방


환영인가, 귀신인가, 몽유병 환자인가


안타깝게도 제방은 도로가와 제일 가까워 밤마다 차로 인한 소음으로 숙면을 취하기 힘들었죠. 벽에서 이상한 소리까지 밤마다 들리기 시작하니 이사를 잘 못 온 것 같아 불안감이 조금씩 쌓아갈 무렵,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밤이었어요. 자고 있다가 무언가 저를 보는 소름 끼치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어 침대 옆을 올려다보니 브리짓이 좀비같이 이상한 눈을 하고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신의 긴 머리를 빗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 이불속으로 머리를 넣고 극심한 공포에 온 몸이 경직됨을 느꼈습니다.


'아악 어떻게 이런 일이!!!! 귀신이야? 브리짓이야?'

'분명히 브리짓인데! 그렇다면 브리짓은 몽유병 환자구나! 불쌍해... 그런데 너무 싫고 무섭다. 귀신같아.'

'몽유병이면 돌아다니기나 할 것이지 징그럽게 머리는 왜 처빗고 있는 거야?'


이불 밖으로 나올 엄두도 못 낼 만큼 미치도록 겁에 질려 눈만 말똥 말똥 뜨고서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다가 산소부족으로 머리가 띵할 무렵 용기를 내어 눈만 빼꼼히 내밀어 동태를 살피자 침대 옆에서 미친년처럼 머릴 빗던 브리짓은 사라져 있었고,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던 나뭇가지 그림자만이 방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그림자를 사람으로 잘 못 봤나? 아닌데... 분명히 브리짓이 머릴 빗고 있었어. 뭐지? 커튼 분명히 치고 잤는데 왜 열려있는 거야?'


수면 시 조금의 불빛도 용납 못하는 예민한 인간이기에 분명히 치고 는데 커튼이 열려있다니... 의문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간신히 다시 잠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 브리짓의 얼굴을 보자마자 연민이 가득한 목소리로 굿모닝 인사를 했습니다. 몽유병 환자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걸 얼마나 숨기고 싶어 할까. 그래서 혼자사나? 브리짓을 배려하는 마음에 처음엔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집에서 툭하면 악몽과 가위눌림에 시달렸고, 그 알 수 없는 노크소리로 제 방이 싫어질 대로 싫어져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던 어느 날 결국 브리짓에게 그날 밤 이야기를 하며 이 집이 무섭다고 털어놓자 그녀는 이상하다며 고개부터 갸웃거리는 것이었어요.


자기는 분명히 이사 들어오기 바로 전에 교회에서 목사님을 모셔와 귀신 쫓는 의식을 치렀기 때문에 이 집에서 더 이상 이상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말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사실 이 집에는 오래전 네 방에서 투병하던 환자가 있었고 그 사람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죽었어. 그 뒤로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을 내가 싼 가격에 산거야. 그리고 뭐? 몽유병? 나 몽유병 환자 아니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걱정 마! 하하하하"


'뭐야? 지금 웃음이 나와? 공포영화 찍어 이 여자? 사람이 죽어나가???'


웃고 있는 브리짓 앞에서 공포에 질린 저는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럼 전 제 방에서 죽어간 그 사람의 망령과 함께 한 침대 위에서 뒹굴며 생활하고 있었던 것인가요? 가난했던 브리짓의 제정 상태로 보아 새 침대를 샀을 리도 만무했죠. 온몸의 털이 서고 닭살이 돋았습니다. 어쩐지 브리짓의 방과 제 방 사이에 쓰지도 않는 작은 쪽문이 달려있어 늘 의문이었는데, 그 문은 환자였던 자식의 간병을 쉽게 하기 위해 브리짓의 방을 쓰던 부모들이 뚫어놨던 거였고, 욕실 벽에 길게 붙어있던 바는 환자의 쉬운 이동을 위해 존재했던 거였어요.


이사 오기 전에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브리짓이 미웠지만 (하긴 그랬으면 이사 오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제가 딴 집으로 나갈까 봐 눈치를 보며 음식도 거의 매일 지극정성으로 만들어주고, 저를 위해 작업이 끝난 늦은 밤 픽업도 자주 오며 배려해준 덕분에 남은 뉴질랜드 생활을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갈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한 달에 400불씩 두 달간 800불이나 내고 견딘 공포체험으로 심신이 꽤 단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히 이사 가고 싶었지만 버틴 이유는 돈에 쪼들리던 브리짓이 가여워서였어요. 제가 낸 방세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 가난한 예술가를 매몰차게 외면할 수 없었거든요.


그 소리가 예의 바른 귀신의 노크소리였는지, 머리빗 긴 머리 여자가 귀신이었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분명했던 건 당시 그 집의 기운이 좋지 않았고, 유방암 초기였던 브리짓의 건강상태도 나빴기에 안 좋은 기운으로 휩싸인 터였다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적어도 초민감한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밝아진 집과 브리짓


그 일이 있고 난 2년 뒤 뉴질랜드로 다시 날아간 저는 로토루아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되었고(케이와 짐의 집에서), 2년 만에 만난 브리짓은 완전히 달라져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유방암이 완치되었고, 표정과 얼굴색은 한결 밝아 보였어요. 돈 1달러에 바들바들 떨던 (저 역시 그랬지만)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큰돈을 들여 정원에 데크를 새로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열고 여행을 다니는 둥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었던 브리짓은 로또에 당첨된 듯 풍요롭고 행복해 보였죠. 알고 보니 노부모님께서 지내던 집을 팔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며 가난하게 살던 예술가 막내딸에게 유산을 미리 남겨주셨던 거였어요. 돈에 찌들어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던 브리짓이 이렇게 변하다니 돈이 좋긴 좋은가 봐요.


브리짓이 정원 한가운데에 예쁘게 가꾸던 꽃들
정원에 피어있던 수국과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의자, 그리고 브리짓이 직접 만든 타일 모자이크 디딤돌

그때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초콜릿 케이크를 정성 들여 구워 들른 그녀의 보헤미안 하우스는 더 이상 귀신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정원에는 더 많은 꽃들이 다채롭고 화사하게 가꾸어져 있었고, 전혀 다른 느낌의 에너지로 가득 찬 집안엔 브리짓의 새 그림들이 걸려있었어요. 예전엔 죽은 시체나 해골, 붉은 피 같은 어두운 주제들로 그려져 있던 그림들이 집안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밝은 색감의 꽃그림들과 정원을 그린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죠! 아무리 보아도 제 그림과 비슷한 느낌에 슬며시 미소가 번져 나왔습니다. 두어 달 같이 산 인연으로 제가 꽃그림의 힘을 전파하고 영향을 준 것이라면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밝아진 브리짓과 보헤미안 하우스를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또다시 잠 못 이루는 밤


그날 그녀는 제게 일주일만 집을 봐달라는 부탁을 했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죠. 딱 봐도 더 이상 나쁜 기운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브리짓이 자기 방에서 잠을 자라고 했기에 오케이 했답니다. 그래서 브리짓이 넬슨으로 여행을 떠난 일주일을 보헤미안 하우스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지만 저는 또다시 밤마다 숙면을 취할 수 없었어요. 다시 귀신 등장이냐고요? 아니요. 악몽도, 가위눌림도, 귀신도, 노크소리도 아닌 생쥐 소리였어요. 외국의 정원 딸린 오래된 집에 흔한 생쥐를 자주 보면서 친근해져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큰 쥐가 아닌 엄지손가락만 한 앙증맞은 미키마우스라 귀여웠지만 그 쥐똥만 한 것이 내는 소리는 단잠을 깨우고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음공해였기에 이를 갈며 다시는 이 집에서 안 잔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속아놓고서! 으이구 이 호구야~


로토루아에서 그린 나비와 백일홍 연필 밑그림
수채화로 그린 나비 날개
브리짓의 집에서 하우스시팅하며 그리던 그림입니다. 연필로 먼저 스케치하고 심혈을 기울여 잉크로 펜드로잉한 백일홍
잉크로 밑그림을 그린 꽃 위에 붉은 계열 색 수채물감으로 채색하여 완성했습니다.
더 이상 귀신도 악몽도 가위눌림도 없었다! 밤엔 쥐 소리에 잠 못들 지언정 낮엔 행복했어요.


Empath 초민감자의 장점


초민감자의 장점에 대해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올로프 박사에 의하면 초민감자에게는 훌륭한 특징과 장점도 많다고 해요. 가슴이 따뜻하고, 곤경에 처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공감 본능이 있는 데다가 꿈꾸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한 이들은 열정적이고 사려 깊으며, 창의적이며 감정에 솔직해 직관적이고 영적인 데다 에너지를 잘 감지해낸다고 하네요. 이와 관련해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타고난 공감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만드는 원천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참고 : 나는 초민감자 입니다 Judith Orloff 저. 최지원 옮김. 라이팅 하우스


브리짓이 키우던 작은 크랜베리 나무가 수많은 열매를 맺어 맛을 보았는데 이건 천국의 맛이었어요!
뉴질랜드의 파란 하늘은 예술입니다. 언젠가 뉴질랜드로 다시 가서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그린 찻잔과 머그컵. 종이 위에 수채. 말린꽃들. 노니 그림.


더 많은 그림들이 보고싶으시다면-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매거진의 이전글 뉴질랜드에 입양된 나의 자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