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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Sep 18. 2020

낯선사람들에게서 꽃을 받다 Ft.장미그림과 장미꽃말

호주 멜번 버스정류장에서 장미꽃다발을 주고 간 사람들의 정체는...


새로운 나라를 느껴보고 그림도 제대로 그려볼 요량으로 부푼 꿈을 안고서 호주 멜번에 짐을 풀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안 풀려 슬럼프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운 좋게 전시회도 가지고 갤러리 주인에게 그림도 몇 점 팔았던 전적이 있었기에 희망을 품고 호주에서 화가로 입지를 굳히러 갔건만 세상은 동양에서 온 아마추어 그림쟁이에게 가혹하기만 하더군요.


수많은 갤러리에서 퇴짜를 맞다 보니 자신감도 줄어들고 한국에서 가져간 돈마저 줄고 있을 때 손가락만 빨며 살 수 없어 일자리를 물색하고 한인 식당에서 바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서빙 일을 구한다고 했던 사장님은 설거지를 온종일 시키셨고 무거운 돌솥과 무쇠 프라이팬을 수십 개씩 닦아야 했던 저는 결국 손목에 무리가 와 압박붕대를 감지 않으면 일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나흘 만에 욕을 무진장 얻어먹고는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종처럼 부리고 보수도 주지 않으려던 사장님은 신고를 당할까봐 눈을 흘기며 마지못해 돈을 주긴 했지만 같은 한국인끼리 정말 왜저러나 싶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식당주인은 한인사회에서 어린 친구들 등처먹는 악질로 유명했습니다. 사장님 나빠요! 외국인 근로자들의 한맺힌 심정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일을 구하러 나섰고 그 식당보다는 보수를 조금 더 주는 자수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티셔츠나 모자에 자수를 놓는 자수기계를 감독하고, 수 놓인 곳의 실밥을 떼어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이 일 또한 기계 다루는 일에 익숙지 않던 제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몸 쓰는 식당일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고, 사장님도 잘 대해주셔서 나쁘지 않은 일터였습니다. (외국에서 경험한 업종 : 하우스키핑, 설거지, 서빙, 슈퍼마켓 청소, 옷가게 점원, 주방보조, 보모, 액세서리 가게 점원, 자수공장 직원, 식당 메뉴판 글씨 쓰기, 미술과외, 치매환자 및 파킨슨 환자 간병(자원봉사), 유기견 돌보기)


멜번 아프레미디 레스토랑을 위해 작업한 메뉴판. 칠판위에 초크, 2011


뉴질랜드에서 앓고 난 뒤 건강을 되찾고 인내심 테스트 겸 그리던 장미, 2008.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해 부은 다리를 두드리며 여느 때처럼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저녁,

노을이 짙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지친 일상을 달래던 제 앞에 웬 낯선 차가 멈춰 서더니 창문이 빼꼼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뭐지?' 하며 쳐다보았고 열린 창문 틈으로 웬 남자가 조수석에서 인사를 하며 제게 불쑥 뭔가를 내미는 게 아니겠어요?

 

은은한 연분홍색 장미 꽃다발이었습니다.


그 호주인 남자는


'This is for you. 이거 너 주는 거야'


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꽃다발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응? 나한테?... 땡큐...'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받기에는 뭔가가 살짝 찜찜했습니다. 꽃을 받으며 고맙다고는 했지만 저의 표정이 미심쩍어 보였던지 운전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고개를 불쑥 내밀어


'Of course! 너한테 주는 거야. 즐거운 저녁 보내!'


하더니 유쾌한 웃음을 꽃과 함께 던져주고는 곧바로 붕 떠나버렸답니다.


꽃다발을 품에 안은채 멍하니 있던 저는 공중에 뜬 기분이었어요.

생각지도 않은 행운에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죠.


'뒤에 경찰이 저 사람들을 쫓고 있을지도 몰라. 그들은 마약거래단인데 경찰에게 쫓기는 도중 마약을 장미꽃 사이에 숨긴 채 내게 준걸 지도 몰라.'


그러나 장미꽃 다발 속엔 마약 따윈 있지 않았고 분홍빛 고운 꽃 사이로 은은한 장미향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경찰차 또한 오지 않았고요. 마약쟁이 치고는 사람들이 너무나 맑아보였달까요?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장미 요정.   캔버스 위 아크릴, 2011.


타지에서 겪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슬픔이 배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때 겪은 그 아름다운 사건은 제게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제 생각엔 그 남자분이 여자분에게 꽃다발을 줬는데, 여자분이 받은 셈 치고 대신 다른 사람 기분 좋게 만들면 어떨까 하고 벌인 서프라이즈 이벤트 같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놀라움을 주다니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광년이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로 꽃에 미친 제게 그들의 선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죠.

 

남을 기쁘게 만드는 사람이 호구가 되는 요즘 세상이라지만 그들이 베푼 작은 선행은 타향살이에 지치고 꿈을 포기하며 자괴감에 빠져있던 외국인 공장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되어 지금도 여전히 묘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벌써 십일 년이 흘러 저는 지금 영국에서 그림 그리며 머물고 있고, 지금까지 작업한 꽃들 중 장미 그림이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종종 재밌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인간이 아닌 그림의 천사들이고,

그림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서 멋진 꽃그림을 그려보라고 제게 장미 꽃다발을 주고 간 것은 아닐까요?



본격적으로 그려본 생애 첫 장미그림들. 2004~2005
한국에서 주로 했던 일은 도자기 만들기와 아이들 도예 수업. 장미를 그려넣은 백토로 만든 도자기 보석함, 2007.
완성된 연필 장미 2008.
뉴질랜드 장미 위에 잠자는 장미 요정을 얹어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덧칠한 후 판매에 성공. 캔버스 위 아크릴, 2011.
뉴질랜드 헤글리 파크 장미. 종이 위에 수채. 2014
뉴질랜드 헤글리 파크 장미. 종이 위에 수채, 2014



뉴질랜드의 햇살을 머금은 장미들. 종이 위에 수채. 작업실 벽면, 영국 브라이튼 JAG Gallery   2014
작업실 책상 위. 나의 에너지원 맥주와 차, 그리고 작업도구들. 영국 브라이튼 JAG Gallery, 2014
브라이튼에서 알게 된 프랑스인 친구 마리안느가 친구 도리안느를 위해 주문하고 구입한 그림, 종이 위에 수채, 2015.
인디고 로즈. 종이 위에 잉크, 2016.
퀼트 장미. 종이 위에 수채, 아크릴, 2012. 씨트리 화장품 스팀크림 용기 디자인으로 채택
나비의 천국. 영국 식물화가 협회 디플로마 코스 졸업작품. 종이 위에 수채, 2016. 가장 힘들게 작업했던 작품입니다.
챠크라 로즈.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19.
침실겸 작업실. 그리다 만 거대분홍장미. 캔버스위 아크릴. 노니그림.




Rose 장미

Still a common symbol, roses for the Victorians also meant love.  Depending on their color, they could indicate the deepness or innocence of that love, ranging from white for purity to burgundy for a unconcious adoration.

여전히 일반적인 사랑의 상징인 장미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하얀색 장미는 순수함을, 버건디색 장미는 무의식적 숭배를 뜻했으며 꽃의 색깔에 따라 그 사랑의 순수함과 깊이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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