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위례신도시가 되어 흔적도 없어진 꽃마을 창곡동에서 푸르른 나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린벨트로 오랜 기간 묶여있었기에 맑은 공기가 감싸던 남한산 끝자락, 60여 가구의 주택으로 이뤄진 작은 마을 귀퉁이에 자리 잡았던 우리 집엔 목련나무, 살구나무, 보리수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등과 철쭉을 비롯한 작은 꽃나무들이 어머니의 손길을 거쳐 활기차고 다채롭게 자라고 있었어요. 집 바로 옆에 산이 있어 응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꽃여사의 정성으로 꽃들은 매해 곱게 피어났습니다. 모든 꽃을 좋아했지만 특히 만개한 목련꽃을 하트눈으로 바라보던 엄마와 작지만 화사했던 정원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은 옛 기억 속에 목련차 향처럼 은은하게 남아있어요.
솜털이 보송보송한 목련꽃 봉오리를 따다 여린 속 알맹이만 떼어 말려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던 초봄 어느 날이 생각납니다. 찻잔을 입술에 대던 순간, 목련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달콤 쌉싸름하고 살짝 매운맛까지 더해진 무아지경의 황홀감을 맛봤습니다. 생강차보다는 덜 매우면서 향기롭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목련차를 마셔본 후 그렇게 제 입맛에 딱 맞는 차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들어요. 지독히도 예민한 인간의 입맛을 사로잡아 맛본 지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황홀한 차를 맛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남의 목련나무에 코알라처럼 달라붙어 봉오리를 홀랑 떼어오기엔 일말의 양심은 있어 봄만 되면 그저 군침만 삼킵니다. 언젠가 마당 딸린 집에 목련나무 심어놓고 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차로 마시려 봉오리를 가차 없이 떼어내 정작 꽃은 보기 힘든 가여운 목련나무가 될 운명이겠지만.
목련을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에 비해 제가 머무는 에딘버러에는 목련나무가 드물게 보입니다. 지난달 집 앞 공원에 심어진 가녀린 목련나무에 연분홍색 목련이 피어있어 웬일 인가 하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사진을 찍긴 했지만 한국의 목련과는 다른 종인지 꽃봉오리가 그리 실하지 않아 별다른 감흥을 못 느껴 눈길을 주지 않은 사이 어느새 봄이 지나 낙화하고 말았네요. 큼직하고 두툼한 한국 목련에 비해 이곳 목련은 알맹이가 쏙 빠진 쭉정이를 연상케 하면서 큰 감동을 주지는 않습니다.
집 앞 공원 Bruntsfield Links에 핀 쭉정이 목련. 2021년 5월 11일
시내에 있는 프린세스 가든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수많은 목련을 피우는 나무를 한그루 보긴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숨을 잠시 멈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꽃구경하고 있을 때 느낌이 이상해 발 옆을 보니 적나라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왕쥐 시체를 발견하고는 혼비백산 도망갔던 적이 있어 영국 목련으로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기엔 아쉬운 마음이 살짝 있어요. 아마도 그 쥐는 살아생전 낭만을 아는 쥐였는데, 한밤중 하얗게 빛나는 목련 향기에 홀려 정신줄 놓은 채 꽃구경하다 살금살금 다가온 여우에게 그만 죽임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별목련 그림
2013년 뉴질랜드 보태닉가든에서 찍은 자목련 사진을 보고 2019년 초, 목련꽃을 스케치하고 나니 장난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토끼, 물고기 그리고 한복 입은 작은 꽃요정도 더해 그려봤습니다(5년 전 식물화협회에서 보태니컬 아트(식물화)를 2년이나 배워놓고 만화 같은 판타지 아트를 주로 그리고 있는 전직 만화가 문하생입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종이위에 수채화, 결국 바탕칠한 뒤 완전히 망해 다시 포트폴리오백안으로 들어감
이 그림은 꽃잎을 채색하면서 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치워 두고 1년 후 다시 꺼내 그리다 또 성에 안차 몇 번이나 포기하고 포트폴리오 백에 넣어뒀던 망작인데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다시 인내심을 갖고 그리다 보니 재활용 종이 신세는 면한 듯해 다행입니다.
그리면서 탐탁지 않아 덕지덕지 물감을 칠해 색감이 탁해질 대로 탁해진 목련꽃잎에 붓으로 별을 콕콕 박아놓으니 밤하늘을 담은 꽃잎이 되었어요. 물감 묻힌 칫솔을 손가락으로 튕겨 한번에 수백 개의 별들을 탄생시키는 꼼수를 부릴 수도 있지만 예쁜 별만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얇은 붓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우직하고 미련하게 그려가며 제가 만든 소우주와 소통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별 보는 걸 좋아해 그림 배경을 별밤 하늘로 자주 그리는 제게천천히 별을 그리는 행위는 현재에 집중하여 알아차림을 하는 명상과 비슷합니다. 늘 명상하듯 꽃을 바라보고 수행하듯 별을 그리며 평온하고 차분하게 살아가는 게 제 삶의 미션입니다.
별을 자주 그려요. 수채화, 색연필, 아크릴화, 유화. 인스타그램 @nonichoiart 에서 더 많은 그림들을 만나보세요!
예전 제 작업실에 놀러온 별을 좋아하는 프랑스인 친구입니다. 별 귀걸이를 한 그녀도 명상을 즐겨해요. 2015년 Brighton
Symbolism of the Magnolia Flower 목련의 꽃말
In Victorian times, sending flowers was a discreet way of lovers sending messages to each other. The magnolia flowers symbolized dignity, nobility, poise, and pride. The strength of its bloom is also symbolic of self-respect and self-esteem.
빅토리아 시대에는 꽃을 보내는 것이 연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심스러운 방법이었습니다. 목련은 존엄, 고귀함, 평정 그리고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개화한 목련꽃은 자긍심과 자존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discreet : careful and prudent in one's speech or actions, especially in order to keep something confidential or to avoid embarrassment
*symbolize : to represent, express, or identify by a symbol
*dignity : the state or quality of being worthy of honour or respect
*nobility : the quality of being noble in character
*poise : graceful and elegant bearing in a person
*pride : a feeling of pleasure and satisfaction that you get because you or people connected with you have done or got something good
*bloom : to be producing flowers
*self-respect : a feeling of respect for yourself that shows that you value yourself
*self-esteem : belief and confidence in your own ability and value. Your self-esteem is how you feel about yourself. For example, if you have low self-esteem, you do not like yourself, you do not think that you are a valuable person.
*시에 관해 - 다소 철 지난 꽃이지만 좋아하는 봄꽃 중 하나인 목련에 감정 이입하며 쓴 두 번째 시입니다. 추위로부터 털로 자신을 감싸 보호해 결국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자존감 강한 목련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겨울눈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나를 지키고 아껴야겠습니다. 시를 쓰면서 내공 부족으로 걸림이 많았지만 묘한 쾌감과 희열을 느낄 정도로 재미있었어요(역시 결과보다는 과정이죠 ㅎㅎ). 시인을 동경하고, 시를 쓰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라고 늘 여겨왔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미흡하지만 시도 써보고 감사한 요즘이에요. 세상의 모든 시인들 특히 브런치의 시인님들 존경합니다.
*글을 다 쓰고 목련차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마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검색해보니 사방천지에서 다 팔고 있네요. 좋은 세상입니다.
*표지그림은 리넨 위에 아크릴로 그린 지중해 별 그림입니다. 사진에는 별로 안 보이지만 은빛 별들이 하늘에 많이 떠있어요. 초저녁이 되자 새장에서 별이 하늘로 하나둘 나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친구의 사진을 써도 좋다는 동의를 미리 얻었지만 혹시 몰라 눈을 가립니다. 굉장한 미인인데 눈을 가리니 미모가 죽네요.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