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클럽에 입장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내 곁에는 아이유가 있었고, 우린 꽤 절친한 사이였다. 그녀가 슈퍼스타 아이유임을 어렴풋이 인지하면서도 일면식 한번 없는 사이에 왜 우리가 같이 노는지 의아했다. 클럽 구경한 지 백만 년이 넘고 춤도 못 추는 내가 연예인과 함께 춤추며 놀고 있다니. 그때 갑자기 어둡던 장내가 확 밝아지면서 클럽이 절로 변했다. 웅장한 대웅전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한 클럽에 몹시 놀라 어안이 벙벙하던 순간 곁에 있던 아이유는 몸을 웅크리며 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대머리 아이유...!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머리통을 하고 수수한 회색 옷을 입은 채 열심히 절하는 그녀의 스님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작년 이맘때 꾼 황당한 꿈 내용입니다. 매일같이 꿈을 꾸지만 이 꿈은 너무나 이상해서 잊히지 않아 다이어리에도 적어놨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꿈이 잘 맞아 작두에 올라타라, 돗자리 깔아라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왠지 뭔가 있는 것만 같고, 대박 계시의 꿈같기도 해 그 이후로 가수 아이유 님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그저 예쁘고 재능 있는 음악인에 연기자라고만 생각했던 연예인을 꿈에서 그렇게 만나고 나니 평소와는 좀 다르게 보이고, 더 빛나 보이기 시작했죠(스님 머리가 빛나서인가). 알고 보니 MBTI도 INFP로 저와 같고, 기부도 틈만 나면 하는 기부천사라는 사실에 더 끌렸어요.
두번 그린 뒤 만족한 아이유 님 연필초상화. 처음 그린 건 쓰레기통으로...(많이 붓고 우울한 아이유로 그려져서 다시 정신차리고 그렸습니다)
그 꿈을 꾸고 얼마 후 유튜브로 우연히 접하게 된 프로그램에서 지장보살에 대해 설명하시는 스님 법문을 들으니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지옥까지 직접 내려가 활동하는 지장보살이 머리카락 하나 없는 '대머리'라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꿈에 나온 아이유가 대머리였는데 그럼 혹시 지장보살? 아이유가 지장보살이라는 건가? 아님 지장보살이 아이유의 모습으로 내 꿈에 나온 건가? 그냥 개꿈이나 무의미한 꿈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계시를 담은 성스러운 의미의 꿈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유 님께 직접 그린 그림이라도 보내드리면 어떨까 싶은 생각에 주소도 검색해 적어놓았지만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그냥 흘러 보냈습니다.
'그 유명하고 바쁜 사람이 내 그림에 관심이나 있겠어? 꿈도 꾸지 말자. 뜬구름 그만 잡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전시, 마켓이 끊겨 1년 동안 수입이 거의 없던 그림쟁이는 부정적인 에너지만 들끓어 오르고, 경제적 쪼들림에 한숨만 푹푹 쉬는 한심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지난봄, 아이유의 새 앨범 '라일락'이 발매되고, '코인'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즈음, 한국에 있는 남동생이 카톡으로 링크를 하나 보내줬습니다. 클릭을 해보니 아동드레스 디자이너 겸 대표인 올케의 인스타로 연결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아이유 님이 우리 올케가 만든 드레스를 뮤직비디오에서 직접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올케의 드레스들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 영국 지인들에게 올케 인스타를 보여주며 자랑했던 그 빨간 드레스를요!
전직 웹툰 작가이자 아이 셋 키우며 옷 만드는 슈퍼우먼 올케는 이 꿈같은 일이 벌어지기 전 일이 너무 힘들어 사업을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순간 슈퍼스타 아이유가 짠하고 올케의 옷을 입고 나타났으니 완전히 꿈같은 대박의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애들 키우느라(큰아들인 남편까지 실질적인 아이 수는 넷)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소처럼 우직하고 부지런히 바느질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내는 우리 천사 같은 올케에게 좋은 날이 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현실 남매 대화>
나 : 그런 부인이 세상에 어딨냐?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동생 : 응 나라를 세 번 구했지.
나 : (속으로) 백번 아니고?
그럼 그 대머리 아이유 꿈은 제 남동생의 가정에 나타날 행운을 의미했던 예지몽인가요? 일 안 풀린다고 찌그러져 우울의 늪을 허우적대던 저와는 달리 늘 밝고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착한 올케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힘이 되어주신 아이유 님 고맙습니다. 참, 올케의 이름도 아이유의 본명과 같은 이지은입니다. 이지은 님이 이지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었군요. 재능 있는 두 이지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환상적인 뮤직비디오가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