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처럼 생긴 스트라스부르 기차역을 등지고 섰다. 넓은 광장 너머로 호텔들이 높게 솟아 있다. 누군가 털어 주는 빵 부스러기에 홀린 비둘기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땅에는 내 몸과 짐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13년 전 6월의 끝자락에 나는 엄마와 시어머니, 어렸던 두 아이와 함께 이곳에 서 있었다.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호텔로 들어섰다. 하룻밤 묵어가려고 예약해 둔 곳이다. 방을 배정받고 열쇠를 받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내가 경험한 유럽 건물의 작은 엘리베이터 중에서도 유난히 작은 이 엘리베이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13년 전 우리 일행은 다섯 명이어서 두세 번에 걸쳐 엘리베이터를 나눠 타고 다녔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춘 적이 있었다. 타려다 말고 주춤하는 내게 직원이 "기온이 높아서 멈췄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사이 엘리베이터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면 참 아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우였다. 그 자리에 그 모양, 그 크기 그대로 있었다. 쉽게 바뀌는 법이 없는 곳이다.
이번엔 혼자라 한두 명이 쓰는 방을 배정받았다. 가파른 나선형 계단과 좁은 복도 역시 13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땐 꼭대기 층의 가족실에 묵었다. 우리는 파리의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와 이틀을 이 호텔에서 보내며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돌아다녔다. 대성당에도 가고, 구텐베르크 광장에서 회전목마도 탔다. 알자스 지방의 전통 목조 가옥이 늘어서 있는 프티트 프랑스를 산책하고, 일강을 따라 흐르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낮은 수로에서 높은 수로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할 때 수문을 닫고, 물을 채우거나 빼서 수위를 맞춘 다음, 다시 수문을 열어 지나갔다. 그 광경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한 시간 넘게 배 안에 있는 것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더욱이 우리 일행 중엔 언제나 울 준비가 돼 있는,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어머니들과 나는 여행 내내 긴장 상태였다. 그래도 탁 트인 구텐베르크 광장에서 긴장의 끈을 살살 풀어 내며 알자스 지방 전통 음식인 슈크루트와 베고프에 맥주도 한 잔씩 마셨다.
그러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발생했다. 뙤약볕에서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들어와 잠시 눈을 붙였다. 둘째 아이와 두 어머니에 이어 나도 잠이 들었다. 다섯 살 첫째 아이가 혼자 깨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먼저 잠이 드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자다가 눈이 번쩍 떠졌는데, 첫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도, 화장실에도 없다. 아이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들이 깨셨다. 아이가 스스로 나갔거나 누가 방에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보려고 신발을 넣어 둔 옷장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 아이가 몸을 구부리고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다가 깨,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면서 따라 울었다. 어머니들도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셨다.
그 호텔을 다시 혼자 찾은 것이다.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그때 그 생각을 했다. 자꾸 미안한 마음, 잘못했던 일 떠올리지 말고 놀란 가슴 함께 쓸어내리던 우리의 그 여행을 떠올리자고. 호텔 옷장에 잠들어 있던 첫째 아이는 올해 9월에 프랑스에서 대학생이 됐다.
혼자 대성당에 들어갔다. 천문시계 앞에 서 있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쉬~~~, 감사합니다." 다정하고 재미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웃곤 침묵했다. 하지만 효과가 오래가진 않았다. 두 번 더 같은 방송이 흘러나왔다. 프티트 프랑스를 산책하며 그때 우리가 배 안에서 열리길 기다리던 수문 앞에도 가 보았다. 여행자가 참 많았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구텐베르크 광장 회전목마에는 아이들과 내가 함께 탔던 하늘색 마차가 그대로 있었다.
프랑스에서 파리 말고 단 한 곳만 추천해야 한다면 스트라스부르를 추천하겠노라고,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혼자 조용히 대답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모든 걸 다 잊어야 한다면, 가장 나중에 잊힐 곳이 여기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