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1928~1991)를 기리는 기념관이 오랜 준비 끝에 생제르맹데프레의 그가 살던 거리에 문을 연다고 했을 때 빨리 그곳에 가 보고 싶었다. 예약이 시작되는 날짜를 알려주는 뉴스레터를 받고 파리 여행에 맞춰 예약을 마치고 방문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철학자들이 머물고 간 곳으로 유명한 두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와 카페 플로르(Café Flore)의 사잇길인 생브누아 거리(Rue Saint-Benoît)로 들어서,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살았던 집을 지나,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업실이 있던 자콥 거리(Rue Jacob)를 거쳐, 기념관이 있는 베르누이 거리(Rue de Verneuil)로 들어섰다.
리셉션에 QR코드를 제시하니 몸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는 손목 안쪽을 내밀었고, 어떤 이는 손등을 내밀었다. 이어 헤드폰과 오디오 가이드를 받았다. 프랑스어와 영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같은 길 가까이에 있는 갱스부르의 집으로 먼저 안내받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집 건물 외벽은 예술가들과 팬들의 그림과 낙서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문 앞을 지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두 명씩 입구 안으로 들어서서, 관람하며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헤드폰을 썼다. 직원이 헤드폰이 머리에 잘 맞는지 점검해 주었다.
가방을 맡기겠냐는 물음에 내 옆의 사람은 얼른 가방을 건넸고 나는 그냥 들고 있겠다고 했다. 무겁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사물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 한쪽에 두는 것이라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권, 지갑, 교통 카드가 모두 들어 있는 가방을 거기 그렇게 두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관계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지켜 주겠지만, 여행자의 마음이라는 게 참 그렇다.
한 조가 된 내 옆의 관람객과 나는 먼저 들어간 두세 명이 나온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예술가 가족의 거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헤드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훅 밀려드는 감동이란 이런 것인가 보았다. 1초간 진공 상태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Jane Birkin, 1946~2023)의 딸, 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1971~)였다. 서서히 집 안 사물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가족이 이 집에 살 때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가 헤어진 열 살 무렵까지 여기 살았다. 그의 기억과 시선을 따라 거실과 부엌, 욕실과 방들을 둘러보았다. 한 가족의 기쁨과 슬픔이 보존된 듯했다. 관람객들의 동선이 엉키면 안 되므로 같은 시간에 집 안에 있는 인원이 소수여야 했다. 관람객을 입장시킬 때 직원들이 그렇게나 공을 들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나와 이번엔 길 맞은편의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좁고 길게 조성된 박물관은 갱스부르의 음악 세계를 보여 주는 영상과 포스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영상을 따라가면서 시기별로 그가 누구와 함께 또는 누구를 위해 음악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념품 코너에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그중에 사진작가 개브리얼 크로퍼드(Gabrielle Crawford)가 쓴 『C’est Jane, Birkin Jane』을 골랐다. 나는 제인 버킨의 라이브 앨범을 듣다가 버킨이 연주자와 스태프를 소개할 때 “나에겐 천사가 있어요. 가브리엘 말이에요.”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저 말을 한 건지 궁금했다. 가브리엘 천사가 늘 자신을 지켜 주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책의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 버킨에게 실존하는 천사가 있었다고 직감했다. 개브리얼 크로퍼드가 영어로 쓴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책장을 넘겨 보니 제인 버킨의 두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루 두와이옹의 서문이 나란히 실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엄마는 그녀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불렀다. 엄마의 천사 가브리엘. 그녀는 언제나 엄마를 위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끊임없이 관심을 주었고 함께 있어 주었다. 우정 그 이상이었다. 친구이자 자매이자 남편이었다.”라고 쓰고 있었다. 루 두와이옹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서 가브리엘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브리엘만 있고 엄마는 없는 시간을 보낸 지 이제 곧 1년이 된다. 죽음을 대비하듯, 새로운 삶을 준비하듯 어떻게든 준비를 했다.”라고 적고 있다. 제인 버킨처럼 영국 출신인 개브리얼 크로퍼드는 버킨의 친구이자 전속 사진작가로 버킨이 세상을 뜰 때까지 함께했다. 매일 조금씩 아껴가며 그녀들의 우정을 읽고 싶어졌다.
기념품 코너에 더 머물렀다간 지출이 걷잡을 수 없어질 것 같았다. 연필 두 자루와 책갈피 하나를 얼른 골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갱스부르와 버킨은 모두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 있다. 언젠가 갱스부르의 묘비 앞에서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친구 대하듯 “안녕, 세르주.”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보았다. 묘비 주위에 그가 늘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소복했다. 버킨은 갱스부르 묘비에서 걸어서 30초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묘비에 엄마의 이름이 더해져 있었다. 꽃과 편지. 버킨의 사진 주위로 사람들이 추모하고 막 돌아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