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의 노래

by 꽃마리

제인 버킨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30여 년 전 파리에 머물 때였다. '뭐라고?'라는 뜻의 「Quoi」란 노래였다. 짧은 전주 후 바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체념한 듯 그러나 기가 막히다는 듯 '뭐라고? 우리의 미친 사랑이 재로 남을 거라고? 지구가 멈춰 서서 그냥 내려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라고 말한다. 광기에 가깝던 사랑이 끝나고 잔혹한 고통이 남았다고 말하는데, 목소리나 선율에는 증오나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만든 노래다.


노래는 1985년에 싱글 음반으로 나왔고, 이어 1986년에 발매된 같은 제목의 앨범에 수록되었다.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제인 버킨의 목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이후 다양한 버전으로 버킨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는데, 외모와 목소리에 담긴 세월은 진지한 예술가로서 버킨의 삶을 더욱 진하고 풍부하게 표현해 주었다.


다른 가수가 부른 「Quoi」도 자주 듣는다. 라이브 앨범 『Favourite Songs』에서 뱅상 들레름(Vincent Delerm)은 칼리(Cali)와 함께 모든 걸 체념한 듯 부른다. 『Madeleines』에 수록된 안 실라(Anne Sila)의 「Quoi」는 너무 경쾌해서 오히려 슬프게 느껴진다.


2023년 7월 16일 제인 버킨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마음이 어수선했다. 유튜브로 그녀의 최근 모습을 보고 있었던 터라 놀라움이 더 컸다. SNS에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자신에게 엄마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말하는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슬픔에 여러 날 내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다.


2012년과 2013년 제인 버킨이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일본의 밴드와 함께 한국에 왔을 때 나는 두 차례 모두 공연장을 찾았다. 두 공연에서 버킨은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그가 만든 노래들을 정성껏 불렀다. 집에서 차에서 수없이 들었던 노래들이 공연장을 꽉 메웠다.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행복이 달아날까 두려워 행복을 피하겠다는 뜻의 「Fuir le bonheur de peur qu'il ne se sauve」를 육성으로 들을 때 더 벅차고 뭉클했다. 우리의 미친 사랑이 다 타버리고 결국 재로 남을 거라고 경고하던 갱스부르답게 이 노래 역시 그의 염세적 태도가 짙게 묻어 있다. 행복의 농도는 언젠가 옅어지기 마련이고 때론 행복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아예 행복해지길 거부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그 노래를 버킨이 속삭이듯 처연하게 불러 주면, 행복해지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는 편에 쉽게 서 있게 된다.


요즘은 2017년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 『Birkin / Gainsbourg : La symphonique』를 자주 듣는다. 갱스부르가 만든 노래를 심포니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버킨이 부른 라이브 앨범이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져 제인 버킨의 목소리가 더욱 깊고 고요하게 들린다. 갱스부르에게 헌정한 앨범으로, 버킨은 '갱스부르의 음악과 영혼을 재해석하면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Quoi」와 「Fuir le bonheur de peur qu'il ne se sauve」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앨범의 마지막 곡 「La Javanaise」는 그녀의 방백처럼 들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랑은 즐길 만한 가치가 있으니 사랑하라고 말해 주는 어른의 목소리를 밤에 듣고 있자면, 오늘 하루가 아무리 내게 뾰족했건 사랑만이 답이란 생각을 하며 편안하게 잠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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