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앙제에는 갈레트 꽃이 피었습니다

by 꽃마리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앙제(Angers)로 가는 기차를 탔다. 종착역이 낭트(Nantes)인 기차였다. 앙제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어학연수가 지금만큼 활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명씩은 휴학을 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나보다 두 학번 빠른 선배가 앙제로 어학연수를 다녀와 한 학번 뒤의 후배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고 했을 때 나는 프랑스어로 ‘천사’를 뜻하는 ‘앙주(ange)’를 떠올리게 하는 그 도시가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를 즐겨 입던 선배와 닮았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곤 했다.


가서 보니 앙제는 회색 도시였다. 오래전 투르(Tours)에서 주변 고성들을 둘러보러 앙부아즈(Amboise)에 갔을 때 보았던 것과 같은 짙은 회색 지붕들이 도시 전체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앙제는 요새였고, 앙제성은 수원화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성벽에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었다. 성 바깥에서 높은 성벽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언제 있을지 모르는 침략과 약탈의 위협 앞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수 세기 전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심란해졌다. 일상을 경계 태세로 살다가 적을 맞닥뜨리면, 입고 있던 차림 그대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물론, 어디 고단한 삶만 있었을까.


앙제성으로 입장해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모처럼 만에 전식과 본식을 모두 주문했다. 전식으로 주문한 당근 수프는 차갑고 가벼웠다. 본식으로는 오징어 요리를 주문했는데, 삶은 다음 버터에 구운 듯한 오징어와 찌거나 삶은 당근과 가지, 데친 브로콜리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매시트포테이토가 한 접시에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차가운 전식이 여행자의 입맛을 돋우고 따듯한 본식이 여행자의 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내친김에 후식으로 디카페인 커피까지 마셨다.


앙제성은 요한계시록의 장면들이 그려진 14세기의 태피스트리를 소장하고 있었다. 90여 장을 연결하면 길이가 100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여유로운 시간과 침묵할 자유가 보장될 때 내 여행의 효용은 극대화되는데, 태피스트리 전시실은 내게 그 두 가지를 모두 보장하는 완벽한 장소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한 장 또 한 장 태피스트리에 새겨진 그림들을 바라보는데 대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마음의 안식을 찾겠다고 만든 인간의 종교가 왜 학살의 역사를 거듭 만들어 내는 것일까.


앙제성에서 나올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에 자꾸 뒤집히는 우산을 추스르며, 봐 두었던 북카페를 찾아갔다. 내부에 앉아 있고 싶었지만, 바깥에서만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했다. 빗발이 잦아들기에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민트티 티백과 따뜻한 물이 담긴 티포트가 곧 내 앞에 놓였다.


그때 헬싱키로 출장을 온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화상으로 통화를 할 수 있냐고 해 페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동료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고작 일주일 조금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한 사이인데 이게 얼마 만이냐는 식의 대화가 오간다. 그새 내 얼굴이 좋아졌다며 동료가 기뻐했다. 테이블 위의 찻잔과 티포트, 이면지, 등 뒤의 책방 풍경을 차례로 비춰 주었다. 다행히 해가 나기 시작하면서 바깥 풍경이 따듯하고 포근해졌다.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온 내가 누리는 이 한가로움에 동료가 환호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아직 여기 머물 시간이 한참 더 남았기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게 주어진 휴가이므로 당당히 즐기기로 한다. 통화하는 사이, 사람들이 책방으로 꾸준히 드나들었다.


북카페에서 나와서 특별한 목적지 없이 산책하다 도서관을 발견하고 기웃거렸다. 그냥 어슬렁거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갈레트 가게를 발견하고 숙소에 가서 먹으려고 채소 갈레트 하나를 주문한 후 야외 의자에 앉았다. 곧바로 직원이 나와서 양파가 막 다 떨어졌다며 버섯을 좀 더 넣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셔도 된다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잠시 후 내 손에는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날 앙제에는 갈레트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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