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에서 만난 사람들

by 꽃마리

앙제 기차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르망(Le Mans)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오는 아이와 르망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외버스 승하차가 이루어지는 르망 외곽의 빈터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빵집을 겸한 카페가 있었다. 플랑(Flan)이라는 커스터드 타르트와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고 건물 바깥의 차양이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높은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내가 있는 곳의 정보를 보냈다.


앙제에서 바로 파리로 돌아가지 않고 하루 묵을 곳을 찾아보다가 이 시기에 르망에서 매일 밤 해가 떨어지고 난 후 '키메라의 밤(La nuit des Chimères)'이라는 빛의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중세 건축물들에 영상을 투사하는 공연이었다. 르망에 갈 이유가 생겼다.


르망은 도시 이름에 남성형 정관사 'le'가 붙어 있어서 도시 앞에 붙는 전치사 'à'와 결합될 때 재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르망에 가.'는 프랑스어로 'Je vais à Le Mans.'이 아니라 'Je vais au Mans.'이다. '주 베 아 르망'이 아니라, '주 베 오망'이 된다. 전치사 '아(à)'와 남성형 정관사 '르(le)'가 합쳐져 '오(au)'가 된 것이다. 나는 특정 문장을 만들 때 르망이 오망이 되는 게 재미있어서 자꾸만 '오망, 오망' 하고 발음해 보았다.


아침 일찍 파리 베르시(Bercy)의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아이가 내가 있는 르망의 카페 테이블 앞에 나타났다. 트램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 동네를 구경했다. 파스텔 색감의 문을 갖고 있는 집들이 많았다. 색감이 부드럽고 따듯해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생쥘리앙 성당(Cathédrale de Saint-Julien)에는 허수아비를 닮은 예수의 십자가상이 있었다.


해가 지길 기다려 중심지 분수 옆 카페 야외석에서 '키메라의 밤'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프랑스에서 야외석에 앉는다는 건 근처에서 담배 연기가 불어와도 맞고 앉아 있겠다는 의사의 표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담배 연기가 파도처럼 내 얼굴과 코로 훅 밀려들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순간적으로 연기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옆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가 옆자리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남자가 얼떨결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야외석에 앉아서 합법적으로 피우는 담배를 가지고 인상을 쓰고 싶진 않아서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했다.


빛 공연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밤 아홉 시가 넘어 시작됐다. 처음엔 중요한 지점들을 걸어서 이동하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어두운 밤에 잘 찾아다닐 자신도 없고, 공연이 생각보다 광범위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분수 맞은편에서 미니 관광 기차를 탔다. 기차가 생쥘리앙 성당 앞에 멈춰 섰다. 사람들이 성당 외벽에 투사된 영상 작품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복면을 쓴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었다.


미니 기차를 타고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들을 중심으로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3~4세기에 지어진 로마 시대 방어벽인 로마 성벽(Enceinte Romaine)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 1,300미터에 이르던 방어벽 중 지금은 약 500미터가 보존돼 있다고 하는데, 프랑스는 이 성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으로 이르는 길을 가리키는 거리 표지판에도 '유네스코 등재 후보'라고 적혀 있었다.


도시 곳곳에 사연 많아 보이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는데, 이 나무들도 빛 공연에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낮에는 평범했던 나무들이 밤에는 사람 얼굴로 변신했다. 밤에 혼자 걷다가 나무 얼굴을 맞닥뜨리게 되면 순간 섬뜩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가 리옹에서 나고 죽 자란 줄 알았는데, 투사된 영상과 함께 미니 기차에서 들려오는 설명을 들으니 어린 시절 일부를 르망에서 보냈다.


미니 기차를 타고 돌아다닌 그날 밤은 꿈이었던 듯 몽환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TV 뉴스에서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공장에 있던 한국인 수백 명을 체포해 간 사건에 대한 심층 보도가 송출됐다. 입장은 다르지만, 나라 바깥에 나와 있는 사람으로서 일이 순조롭게 해결돼 평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길 마음으로 빌었다.


체크아웃 때 리셉션에 있던 직원의 인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보통은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정도인데, 큰삼촌이 먼 길 떠나는 조카들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좋은 주말 보내세요. 건강도 잘 보살피시고요. 다음에 또 보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숙소를 나서면서 건강을 잘 보살피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낯설고 고마웠다.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근처 어느 집 창문 안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갑자기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도 인사를 건넸다.


버스 시간이 남아 있어 아이는 미술관으로 가고, 나는 생쥘리앙 성당 주변을 산책하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성당 바로 앞 북카페에 들어갔다. 민트티를 주문하니 최대한 3분만 우리라는 말과 함께 쟁반에 찻잔을 올려 건네주었다. 주말 이른 오전, 북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웠다.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에게 손짓을 하며 "왔어? 주문했어? 나도 주문하고 금방 갈게." 한다. 어느새 자리가 거의 다 찰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공간을 꽉 채웠다. 자리마다 안내문이 적혀 있어 읽어 보니,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약 한 시간마다 주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차 한 잔을 더 주문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내 옆 테이블에 젊은 부모가 아기와 함께 외출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달래려고 분유를 꺼낸다. 나는 한국식으로 몇 개월이냐고 물었다. 3개월이라고 했다. 아기가 분유를 먹으며 몸에서 소리를 낸다. 젊은 부모가 사람들에게 민망하다는 듯 약하게 탄식한다. 하지만 아기가 내보내는 그 소리가 부모를 안심하게 하고 환호하게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귀에 들리는 소리들을 애써 듣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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