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도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 태어나 삶을 마친 곳이다. 세잔의 고향답게 엑상프로방스는 원래도 세잔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테지만, 마침 내가 방문한 시기에 '세잔 2025' 행사가 열리고 있어 도시는 세잔의 기운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
도시 외곽의 TGV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세잔 2025' 행사의 일환으로 세잔의 작품들을 전시 중인 그라네 미술관(Musée Granet)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잡으려다 잠시 멈춰 눈앞의 가로수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향해 쭉쭉 잎을 펼쳐 내고 있는 플라타너스들이 숨 좀 돌리고 가도 예약 시간에 늦지 않을 거라고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무들이 어찌나 울창한지 도시와 자연이 원래부터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라네 미술관이 있는 거리에는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나도 뒤에 섰다. 들어갈 때 짐 검사를 엄격하게 했다.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가방 외에는 반드시 짐을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짐 보관소에 있던 젊은 여성이 내 가방을 받아 들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가방을 그대로 들곤 금세 다시 나타났다. 뒤 칸에 가방을 보관할 공간이 없었던 모양인지 앞 칸 빈 공간에 내 가방을 넣고는 번호표를 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뒤 그 직원이 내게 번호표를 건네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곤 쑥스러운 표정으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한국인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의 의미로 목적어를 생략한 채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녀가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요.'의 의미로 "조금 알아요."라고 역시 웃으며 답했다.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으니 그녀도 그중 한 명일지 모른다. 관심이 없다면, 나를 보며 한국어로 말하며 그렇게 환하게 웃을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양인에게 중국어나 일본어로 대뜸 말을 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이었다고 그 순간을 기억한다. 여행자의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잠시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녀의 확신이 오류 없이 맞아떨어져서 다행이었다.
미술관 안에는 관람객이 많았다. 세잔의 작품들이 이 전시를 위해 여러 미술관에서 와 있었다. 세잔의 작품 속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목욕하는 사람들을 여러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를 그린 작품도 많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도 그녀가 나를 알아보곤 가방 맡긴 곳의 반대쪽으로 가서 찾으라는 의미로 팔로 방향을 가리키며 "여기예요, 여기예요."라고 한국어로 크게 외치고는 또 웃었다. 마치 저 관람객은 내가 담당한다고 동료들에게 선언이라도 한 것 같았다. 거리가 있었기에 나는 말로는 하지 못하고 목례와 묵례로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 내게 그라네 미술관은 세잔이 아니라 그녀다.
다음 날 오전에는 세잔의 작업실(Atelier des Lauves)로 향했다.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가는 길에 이번엔 사이프러스가 자주 보인다. 마치 실력 있는 정원사가 마법의 사다리를 타고 우듬지까지 올라가 깔끔하게 정돈한 것처럼 땅에서 하늘까지 흐트러짐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무다.
그날의 첫 회차 관람을 예약해 두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출근 전이어서 나와 같은 시간대를 예약한 이들이 문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동행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나는 혼자라서 걷고 싶을 때 걷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어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여행이었다.
인솔자의 안내를 따라 다 같이 관람해야 해서 입장 후에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기다렸다. 사람들이 얼추 다 모였을 때 오솔길을 거쳐 세잔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 앞으로 갔다. 빈터에 모여 누구는 앉고 누구는 선 채로 인솔자의 설명을 들었다. 세잔은 집을 두고, 마을에서 떨어진 이곳에 작업실을 따로 마련했다. 지금은 도로가 잘 정비돼 있지만 세잔 시대에는 온통 밭이었다. 인솔자의 설명을 듣는데, 집에서 한참을 걸어서 작업실로 오고 있는 세잔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일상의 복잡함과 까다로움을 털고 오로지 그림에 집중할 힘만 모으며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세잔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도를 보니 세잔의 작업실에서 북쪽으로 더 걸어가면 화가들의 정원(Jardin des peintres)이 있어 가 보았다. 사이프러스가 곳곳에 뻗어 있는 언덕에 화가들의 그림이 이젤에 전시돼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세잔이 즐겨 그린 생트빅투아르산(Montagne Sainte-Victoire)인가 보았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 틈에 끼어 시야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을 한껏 즐겼다.
오후에는 세잔 가족이 살던 저택인 자 드 부팡(Bastide du Jas de Bouffan)으로 향했다. 19세기 프로방스식 저택과 넓은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먼저 정원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정원에는 그림의 대상이 된 풍경을 배경으로 세잔의 그림들이 이젤에 전시돼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서 아름드리나무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테이블과 나무 의자에 나무 그림자가 내려와 앉았다.
이번에도 만남의 장소로 가서 인솔자를 기다렸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늦게 아래에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통이 넓은 바지(어쩌면 치마일 수도 있다)를 입고, 위에는 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베레모를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커다란 목소리로 인사하며 등장했다. 복원 중인 저택 건물 안으로 그와 함께 들어가서 조심히 계단을 오르며 세잔 가족의 집안을 둘러보았다. 휠체어를 탄 관람객이 있었는데, 인솔자가 누군가에게 바로 연락을 취하자 어딘가에서 전담 담당자가 나타나 따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하곤 계속 옆에 머물렀다. 복원 중인 역사적 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인솔자가 내년에는 복원이 모두 끝나 있을 거라며 또 오라고 했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카페 야외 테이블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배가 출출해져 샐러드를 주문하려는데 다 떨어졌다고 해 아몬드 케이크를 선택했다. 언제까지고 이곳에만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