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첫 이틀을 묵은 작은 호텔은 지금도 그 공간에 다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내겐 특별한 숙소다. 아래층은 약국이고 위층은 호텔인, 세로보다 가로가 긴 건물이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작은 리셉션이 있고, 리셉션을 기준으로 방들이 양옆으로 배치돼 있었다.
내게 배정된 방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몸을 틀어야 할지 잠시 생각하던 찰나, 호텔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내 앞을 지나가기에 번호가 적힌 열쇠를 보여 주며 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따라오라며 그가 앞장섰다. 길지 않은 복도의 끝방이었다. 거기까지만 안내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열쇠를 가져가 문을 직접 열며 방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방으로 먼저 들어선 그가 창밖을 가리키며 "당신에게 안뜰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주차장을 겸한 안뜰 중앙에 커다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조그맣게 감탄했다. 이 나무가 르망에 있었다면 '키메라의 밤' 행사에서 '나무 얼굴'로 차출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옅은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그가 내 옆의 문을 열며 "여긴 욕실이고, 저건 변기예요."라며 보면 아는 것까지 설명했다. 나는 그가 문만 열어 주고 나갈 줄 알았기에 한 손으로 문고리를 여전히 잡고 있는 상태였다. 드디어 설명을 마친 그가 "Bonne installation !"이라고 말하며 나갔다.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라고 말할 때 가볍게 쓰는 표현이다.
방은 이번 여행 중에 묵은 호텔 중에서 가장 작았다. 책상이 욕실과 맞닿은 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책상 앞에 놓인 의자와 침대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었다. 나는 작은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라 방이 작아서 더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환한, 지상의 동굴 같았다. 창문을 열고 '나의' 안뜰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방에서 안뜰이 보인다고 말하지 않고, 당신에게 안뜰이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직역하면 "당신은 안뜰을 가지고 있어요."였다. 자신의 호텔을 선택한 투숙객에게 시적인 표현으로 감동을 줄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사 '가지다(avoir)'가 발달된 언어의 특성에서 비롯된 평범한 문장을 구사했을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묘하게 마음에 잔물결이 일렁였다. '그래, 잠시 내 안뜰이라고 생각하자.'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 보니 리셉션 맞은편에 테이블 서너 개가 있고, 한쪽 편에 빵과 커피, 차 등이 간소하게 차려져 있었다.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여성 두 분이 마주 앉아 아주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고요히 식사를 이어 갔다. 아바야를 입은 분이 리셉션에 앉아 있다가 식사 공간을 간간이 챙기곤 다시 리셉션으로 돌아갔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리셉션에 들러 오늘 방 청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분이 서랍에서 공책을 꺼낸 뒤 다시 한 번 방 번호를 확인하곤 알았다며 메모를 했다.
낮에 해가 잘 들어올 것 같아서 속옷을 빨아 옷걸이에 걸쳐 창문 근처에 걸어 두고 외출했다 돌아오니 휴지통이 비워져 있었다. 낮에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빨래를 널어놓고 나갔다 왔는데, 다 보셨겠구나 싶어 조금 민망해졌다. 공책에 꼼꼼히 적어 둔 메모를 전하지 않으셨나 보다.
이틀을 묵고 호텔을 떠날 때 아침 식사 시간에 만났던 분이 리셉션에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푹 쉬고 간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그분이 내게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그날 엑상프로방스에서 버스를 타고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살았던 루르마랭(Lourmarin)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카바용(Cavaillon)으로 이동해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프로방스 지방의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는 주(Zou) 버스를 탈 생각이었고, 카바용에 아직은 무료 취소 날짜가 남은 숙소를 예약해 두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포기했다. 그날은 9월 18일이었고, 9월 10일에 이어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예고돼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으로 대중교통 운행이 차질을 빚으면, 어딘가에 묶여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될지도 몰랐다. 전날 밤, 엑상프로방스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하고 카바용의 숙소는 취소하고 도시 외곽의 숙소를 서둘러 예약했다. 안뜰이 보이는 방에서 하루 더 묵고 싶었지만, 그새 요금이 훌쩍 올라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숙소를 이미 예약했다는 말을 하기가 꺼려져서였을 것이다. 루르마랭으로 가려고 했는데, 파업 때문에 아무래도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분 역시 버스나 기차가 제때 다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아무래도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곤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11시 전에 호텔로 전화를 하라며 호텔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한 장 꺼내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파업 때문에 11시 이후로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른 숙소를 이미 구했기 때문에 연락할 일이 없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다. 명함을 꼭 쥐고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호텔을 나섰다. 그날 받은 명함을 책갈피로 쓰며 안뜰의 플라타너스와 조용한 아침 식사와 파업을 걱정해 주던 마음을 종종 떠올리는데, 그 기억이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내가 거니는 거리는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축제 분위기였다. 그림 도구가 들어 있을 가방을 등에 메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세잔의 동상을 지나 로통드 분수(Fontaine de la Rotonde)를 거쳐 동쪽으로 길게 뻗은 미라보 광장(Cours Mirabeau)으로 들어서자 장이 서 있었다. 상인들이 진열해 놓은 옷과 가방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거리를 몇 번이나 오가며 개성 넘치는 옷들을 구경했다. 거리 끝에 비누를 파는 매대가 있어 파리에 있는 아이에게 사다 주려고 샴푸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파리에서 같이 들렀던 상점에서 구하지 못하고 나왔던 기억이 나서였다. 이 비누들로 머리를 감아도 되지만, 머리카락에 특화된 비누는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얼굴과 몸에 쓸 비누를 몇 개 살까 하다가 무거워질 가방 생각에 그냥 발길을 돌렸다. 거리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색소폰 연주가 흥을 돋웠다.
예정에 없던 하루가 생긴 터라 가려고 정해 둔 곳이 없었다. 운동 앱에 가입하고 무료로 받은 포인트로 갈 수 있는 필라테스 센터가 주변에서 검색돼 예약하고 가서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초보자를 위한 리포머 수업이었는데, 초보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국에서 내가 다니는 센터보다 훨씬 운동 강도가 셌다.
평소보다 길게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한참을 걸어 세잔이 묻혀 있는 묘지로 향했다. 처음부터 계획해 둔 건 아니지만 '세잔 2025' 행사가 열리는 해에 엑상프로방스에 왔으니 세잔의 무덤 앞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고 특별할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커다란 묘지에서 세잔이 묻힌 자리를 찾았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사과 한 알이었다. 사과는 그 자리에 놓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여전히 싱싱했다. 한국의 집에 있는 둘째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서 있는 곳을 화면으로 보여 주었다. 여기 세잔이 묻혀 있는 곳인데, 사과가 있다고. 사과 하면 세잔이니까 누군가 사과를 가져다 놓은 모양이라고. 아이가 "응, 그러네." 했다. 나 외엔 아무도 없고, 바람은 솔솔 불고, 햇볕은 적당히 따스해서 전화를 끊고 나서 세잔의 무덤 주위를 한참 더 왔다 갔다 했다.
또다시 걷고 걸어 도시 외곽의 두 번째 숙소로 갔다. 세 시경에 도착했는데, 다시 나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이미 시내와 멀어져 있었다. 외출할 생각을 접고 방에 머물렀다. 창문 커튼을 젖히니 이번엔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두 그루도 세 그루도 아닌 딱 한 그루가 거기에 있었다. 나무로 감동을 주려고 작정한 도시였다, 내게 엑상프로방스는. 이날 저녁 식사는 자판기 토마토수프로 때웠는데, 때웠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맛이 좋고 양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