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에서 아침으로

by 꽃마리

내가 지나다니는 길이 평화로웠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예정에 없던 하루를 더 보내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해 많은 시민이 또다시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왔다. 이날 언론사 SNS에는 경찰이 마르세유에서 있었던 시위를 진압하는 영상이 반복해서 송출됐다. 최루탄 연기가 도로에 자욱한 가운데, 경찰이 천 가방을 든 반바지 차림의 여성을 발로 차고 떠밀며 "꺼져!(Casse-toi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다. 여성은 일어서려다 경찰의 발길질에 쓰러진 뒤 가까스로 몸을 다시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이날 50만~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막 개강한 아이의 학교도 출입이 봉쇄됐다.


엑상프로방스 버스터미널에서 아비뇽(Avignon)으로 가는 주(Zou) 버스가 아침 8시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루르마랭(Lourmarin)으로, 루르마랭에서 카바용(Cavaillon)으로, 카바용에서 아비뇽으로 이동한 후 아비뇽에서 TGV를 타고 파리로 가는 여정을 계획해 두고 있었는데, 루르마랭과 카바용은 건너뛰고 엑상프로방스에서 아비뇽으로 바로 가게 됐다.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어떻게 걸어가는지 확인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눈을 떴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동이 완전히 트기 전이어서 여전히 어둑했지만, 창문 밖 사이프러스의 형체를 알아볼 만큼의 빛살은 있었다. 하룻밤 곁에서 잘 머물고 간다고 인사했다.


숙소가 있던 외곽에서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차선이 여럿인 큰 도로 옆 인도를 길게 걸었다. 도로에 차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큰 차들이 지나가는 데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걸었다. 절반 정도 걸었을 때 불을 밝히고 있는 빵집이 보였다. 지도에서 본 빵집이었다. 들어가서 아비뇽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먹을 빵을 골랐다. 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 왔지만, 피할 수 없을 때는 너무 많이 먹지만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바게트를 10센티 길이로 자른 다음 칼집을 넣어, 마요네즈로 버무린 닭고기를 넣은 샌드위치를 골랐다.

모퉁이를 돌면 버스터미널이 나올 무렵 부스형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버스 타기 전에 들렀다 가려고 살펴보니 파리와는 다르게 유료 화장실이다. 지갑에서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려는 순간 내 왼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니 갈색 재킷을 입은 여성이 서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무료 화장실이 있어요." 내가 "아, 그래요?"라고 답하자 "아주 깨끗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요. 같이 가시겠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원래 동행이었던 것처럼 함께 잠시 걷다가 버스터미널 매표소 근처 무료 화장실 앞에서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갈 길을 가는 아침 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이에게 굳이 말을 걸어 무료 화장실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 나는 요즘도 그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8시를 5분 앞두고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사서 아비뇽으로 가는 63번 버스에 올랐다. 기사가 신중하고 온화하게 나를 맞으며 표 검사를 했다. 커다란 버스에 승객은 나를 포함해 너덧 명이 다였다. 버스는 몇 군데에서 정차해 승객을 더 태웠다. 버스가 엑상프로방스를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빵집에서 산 바게트 샌드위치를 꺼내 아침 식사를 했다. 프로방스의 풍경이 차창 너머로 지나갔다.


버스가 아비뇽에 들어선 뒤 농업고등학교 정류장에서 처음 정차했을 때 뒷문으로 남성 서너 명이 내리면서 기사에게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라고 말했다. 기사도 운전석 위에 달린 거울로 하차하는 승객들과 눈을 맞추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평범한 그 장면이 각별하게 여겨져 사람들이 버스에서 멀어지며 작아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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