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과 함께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40대를 지쳐가는 힘이다.
12월이 시작되면 마지막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홀로 외로움을 곱씹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혼자도 병이라 너무 깊어지기 전에 사람들을 찾으러 나서기도 한다.
2018년 올해는 특히 인연이라는 관점에서 내게 의미가 깊은데,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낼만한 인연들을 여럿 알게되어서일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기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과 비슷하게 맞는 사람을 찾아 주고 받으며 함께 기대어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당연하고 단순한 이치를 마흔 넷이 되어서야 알게 된 요즈음이다.
엊그제는 그 인연 중 한 사람과 만나 샤로수길에서 식사를 했다. 두 번째 저녁식사인데 서로 직장일을 마치고 나서 매우 피곤했음에도 밤 11시까지 이야기가 끊임이 없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그이는 교수세계의 여러가지에 환멸을 느끼고 미술치료쪽으로 일하고 있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미술 쪽으로 넘어가며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가지들을 묻고 이야기듣게 되었다. 미술전공자의 이야기인 일본만화 <갤러리페이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미국 현대미술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만화를 나만큼 좋아하고 소장하고 있기도 했는데, 내친 김에 집에 들러 그이가 갖고있는 단행본 만화를 냉큼 실어왔다. 다음주 내 단행본을 전해주기로 하여 책을 차에 싣다가 내가 갖고있는 소장만화를 한 번 정리해보아야겠다 생각했다.
1. 갤러리 페이크 (전32권)
2. 아르미안의 네딸들 (전14권)
3. 노다메 칸타빌레 (전25권)
4. 피아노의 숲 (14권까지만 나왔을 때 단행본 구입. 완결까지는 인터넷서점에서 다운받아 읽음)
5. 다이어터 (전3권)
6. 묘진전 (전4권)
7. 쌍갑포차 (7권)
쌍갑포차만 다음웹툰에서 연재진행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완결된 만화들이다. 다이어터 부터 최근의 책까지는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하였지만, 4번까지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갤러리 페이크 는 약수동에 있던 지하 만화방에서, 아르미안의 네딸들과 노다메 칸타빌레는 보광동에 있던 책대여점에서, 피아노의 숲은 중고나라 에서 구했다. 그래서 책마다 바코드가 있는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그조차 일종의 기록이 될 것 같아 보기 나쁘지 않아 그냥 두었다.
이 모든 책들을 다 정리하여 차에 실었다. 내년 6월까지 빌려주기로 했다. 시간날 때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또 시간이 되면 또 읽으시라고. 나 또한 그이가 빌려준 <불의 검>과 <마젠타>를 천천히 읽기로 했다. 그이와 함께 어릴 때 읽던 만화의 기억들을 소환하며 나눈 대화는 참으로 즐거웠다.
나이가 들면 무엇이든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40대 중반, 일도 사람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는 중압감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마음을 잠시 덜어버리고, 동네 만화방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며 보내거나, 단행본을 빌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귤 한 바구니 쉴새 없이 까먹으며 온갖 근심걱정과 시름은 뒤로 하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 만화에 빠져보는 일, 작지만 확실히 행복해지는 방법, 이 40대를 지쳐가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