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단계의 콩나물무침, 오백단계의 빨래하기 말고 사랑 한단계!
요즘 나의 화두는 살림... 가만히 누워 콩나물무침을 만들어볼 생각을 해본다. 팔베게를 하고 옆으로 쪼그리고 누워 눈을 감고 공상에 젖는다.
- 요리
일단 일어나서 옷입고 지갑을 챙겨 나가야겠지. 가게에 가서 콩나물을 찾아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들어와야겠지.(여기까지 6가지 일을 함) 봉지를 뜯어 흐르는 물에 씻고 콩껍질을 골라내야겠지 (3가지). 냄비에 물을 떠 콩나물을 넣고 뚜껑을 덮고 팔팔 끓이다가 각종 양념을 찾아 뚜껑을 열어 한스푼씩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아 찬장에 정리해두어야겠지. (여기까지 9가지. 양념갯수에 따라 무한정 추가)
여기까지 생각하다 공상이 끝나고 눈을 떠 천장을 본다. 콩나물무침을 하려면 한 백가지 일은 해야하는군. 아 그냥 라면에 계란 풀어 먹자. 아니면 배달의 민족.
- 빨래
사실, 요즈음 진정한 화두는 빨래... 어떤 이들은 빨래야 세탁기가 다한다지만, 조사결과는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빨래는 집집마다 그 방법이 모두 달랐다.
지난주 토요일, 아들의 레포츠 수업시간에 모인 어머니들과 까페에서 수다 중에 빨래에 대해 심층취재를 했다. 그리고 받아적다 지쳐 못내 다 정리하지 못했다. 모두 빨래에 대하여 할 말씀이 많은 듯 했다. 콩나물무침이 심경상 백가지 일을 해야했다면 빨래는 적어도 오백가지 일 이상은 해야한다는 느낌이었다.
한 분은 수건은 필히 삶는다. 다른 분은 겉옷과 속옷과 양말을 분리세탁한다. 다음분은 애벌빨래 후 약 1시간을 물에 불려놓은 후 본빨래를 하고 헹굼을 세 번 더 한다. 그리고 마지막분은 세탁기에 넣기 전 흰 옷의 때는 손빨래로 지운다. 언니들이 빨래하는 방법을 다 듣고나니 새삼 입고있는 옷들이 유난히 더 빛이 나 보였다. 그러나 이런 중에서도 대미는,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거지 빨래 안해봤어? 라고 묻던 프리랜서 디자이너 언니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물었다. 여름이 오는데 옷정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다섯명의 언니들 동시에 얼굴 찌푸리며 생각하기도 싫다는 아우성이 울려퍼졌다. 옷정리는 주로 4월과 10월에, 그리고 이 또한 가족별로 한다는 분, 옷장별로 한다는 분 등등 각각 집마다 방법이 달랐다.
오늘 낮에 만난 언니와 이베리코 흙돼지 등심을 먹으며 또 한 번 빨래에 대해 물었다. 집집마다 다른 빨래방법에 대한 정의를 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물었는데, '자기집 상황에 맞게 빨래하는 거지, 그리고 내 스타일대로 하는거야' 과연, 이 말이 정답으로 느껴졌다.
설겆이와 청소는 여차저차 할만하다.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이 요리와 빨래. 곰곰히 이 둘을 잘 하는 방법을 고찰 후 결론지어본다.
진정, 어머니들이 요리를 하는 마음은 오로지 하나이다. 내 가족이 배가 고프니 맛있게 만들어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 내게 콩나물무침은 백단계를 거쳐야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어머니들에게 콩나물무침을 만드는 방법은 ' 우리아들(딸) 배고프겠네. 콩나물무침반찬해줘야지 '. 단 한가지이다. 빨래도 그렇다. 내겐 오백가지도 넘는 단계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아들(딸) 깨끗하게 옷 입혀야지' 오로지 단 한가지 방법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태어나 공부만 하고, 일만 해왔다. 공부는 머리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살림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나. 살림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수학공식과 풀이처럼 단계로 대입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살림을 시작해보련다. 결혼 후 9개월간 시어머니와 살며 반찬장인이 되었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일주일에 하나씩은 반찬을 만들어보고, 나만의 빨래 스타일을 찾아보자고 다짐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