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눈물의 여왕> 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여주인공은 뇌 쪽에 암이 생겨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데,
현실을 걱정하면서도 부정하며 하루하루 목표를 향해 매진하며 산다.
더욱이, 신약개발소식을 듣고 독일에 날아가는데, 아무 동행 없이 혼자 가서 진료를 마치고 난 후, 실망하는 마음마저 혼자 삭혀낸다. 암선고를 받을 때도 혼자 가서 듣고, 남편에게만 슬쩍 말해두고, 병원검사와 치료도 혼자, 병에 대한 자료조사도 혼자, 모든 걸 혼자 한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닌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하면서, 저 먼 독일까지 혼자 가서 진료를 받다니 씩씩해도 너무 씩씩해서 비현실적이네... ' 라고 다소 의아해하는 순간,
암수술로 병원에 다니던 내 3년 전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역시 모든 걸 홀로 했었다. 그리고 내심 참 그걸 "편안해" 했다.
지나고보니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이 함께 하면서 옆에서 늘 같이 있으며
말을 걸고 챙겨주고 도와주려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 않은 이상 오히려 더 "피곤"했다.
그리고 그런 "신세"를 진 경우, 내가 갚아야할 마음의 빚과 그에 따른 표현을 하며 살아야함이 더 "불편"하다는 것이 내 무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사실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진짜 이유는,
나의 약한 모습, 내가 우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때는 병원 침실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옆에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나 때는 코로나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 하반기였고,
병실에 보호자가 들어오려면 등록된 명찰을 패용하고 단 한 사람만 올 수 있었다.
검사와 결과를 듣는 순간에는 혼자 가더라도 수술 시에는 하루 정도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그조차 나는 간병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평이 좋았던 분을 구하고,
1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동생이 오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어 병원에 오는 게 걱정스러웠다.
내가 괜찮다는데, 여동생은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하는 나를 울면서 원망했고,
나는 합리적인 내 판단에 왜 저러나 싶어 당황스럽기만 했다.
내 소식을 들은 천사같은 친구 한 명이 극구 병원에 와서 같이 있겠다고 했지만
그 친구도 아이가 셋이나 있어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수술 당일, 먼저 도착해 내 병실을 찾은 친구가 나중에 온 간병인분을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중고대학생으로 다 컸다지만, 어쩌냐며 걱정하는 나를 두고
아이들에게도 다 허락받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친구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던 지인에게 간이식을 해주려 종합검진 중에 위암 극초기를 발견하고 수술을 마친 전력이 있던, 정말 천사같은 이였다.
나와도 일년에 한두번 연락하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달려와준 친구가 너무나 고마울 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려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던 친구는 나를 너무나 살뜰히 챙겨주었다. 긴 머리를 양갈래로 따서 눕기 편하게 해주기도 했다. 마흔이 넘어 했던 양갈래 땋은 머리가 신기해 셀카를 찍어두기도 했고, 그건 내게 남겨진 유일한 병원사진이 되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여정은 녹록치 않았다. 수술 이후가 사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암 선고를 받은 이후 계속 암까페들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공부하며 읽느라 눈이 많이 나빠졌고,
당시 마흔 중반을 넘기는 시기로 노안이 시작되기도 했는데, 그건 심적으로도 쉽지 않았지만 실제로도 눈의 촛점이 휙휙 바뀌기 때문에, 두 개의 안경도 새로 맞추고 바뀌는 눈에도 적응을 해가야 했다.
기본으로는 병원진료와 치료를 원칙으로 하며, 비타민 씨의 효과에 대한 책도 읽고,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은 중에도 전업치병을 하여 병을 고친 분의 강의도 수강했다.
병원을 찾는 일과 의사를 찾는 일부터 모든게 정보였기에, 눈이 혹사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쉬어야하는 시기이기는 하나 모든 것을 직접 해야하고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영양제를 먹어야하는지, 언제 먹어야하는지, 어떤 효능이 있는지, 무엇을 먹어야할지부터 해서, 단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켜야할 가족이 내게 있었기 떄문에, 어쨌든 이 시기를 잘 넘겨야했다.
10월 중순에 건강검진으로 발견한 암세포, 긴가민가 암이 아니다 맞다 하며
총조직검사와 맘모톰까지 하다가 결국 암으로 발견한 세포.
수술, 비타민씨메가도스요법과 병행하던 방사선치료까지 마치는 데에는 5개월이 걸렸다.
비타민씨 요법은 그 후로 3개월 정도 더 진행했다.
수술 후 매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해야했는데, 지난번 방문시에는 1년 후에 와도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11월에 뵙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 나는 공부하고 마음을 다지고 생활습관을 고치고 노력한다.
유방암은 다른 암과 달라서 5년이 지나도 완치가 아니라 이후에도 20프로의 재발률이 보고되고 있기 떄문이다.
공부를 계속 하다보니 이전에 너무나 많은 잘못된 습관들이 내 세포들을 나쁜 아이로 만들었고,
나쁜 세포들은 나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고 잘못된 습관으로 이렇게 되었다며 나에게 호소한 것이 암이었음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이고 세포를 다시 살려내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생활하다보니 쉽지 않은 일이라 주기적으로 결심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본다.
글로 쓰자면 단 1분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지만, 일생도 단 한 줄로 마무리될 수 있다.
혼자였지만, 그만큼 치열했고, 필사적이었고, 편안했고, 무엇보다 홀로 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누군가 나처럼 혼자 다 해야하는 분이 있다면, 혼자의 이유는 정말 여러가지이겠지만, 상황도 되지 않을뿐더러 가장 소중한 이에게 조차 알려서 부담을 주기 싫은 분이 있다면, 내가 공부하고 알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또 다른 인연이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평생 공부하며 평생 가져야할 습관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