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들어 책을 참 많이 읽었는데, 따로 목적이 있던 읽음이 아니라 닥치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그리 많이 읽고도 아무것도 달라지는게 없다 라고 혀를 끌끌 차시던 어머니 말씀에 뭔가 허탈하기도 하고 수긍이 가기도 한 것은 그 말씀이 맞기도 했고 결국은 내가 책 읽음에 아무 목적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따로 얻으려고 한 것도 없고 바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 기대어 삶의 허망함을 많이 달래고 버티어낸 것이 그 시간의 유일한 목적이자 쓸모였다면, 내게는 정말 대단한 쓸모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상우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까지 졸업하고 졸업장과 졸업사진이 5개나 되는 어엿한 20대 청년으로 자라났다. 어머니와 함께 키우던 날들, 직장생활을 하며 어렵게 키워낸 소중한 내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내 품을 더욱 원하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어릴 때보다 더 진한 모자간의 정을 나누고 데이트를 하게 되는 중이다. 여전히 상우는 영원한 나의 아기이고 나에게 이 삶은 끝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야만 한다.
상우는 계속 자라고 있지만, 다섯 개의 졸업장을 따는 동안 생각없이 달려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 이상의 뿌듯함과 변화는 없음을 깨닫는 순간 밀려오는 허탈감은 2차로 나를 강타했다.
그래서 다시 내가 기대어 일어서야할 곳은 공부 뿐이었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으니, 그냥 공부할 뿐이다. 책이 나를 살린 것처럼, 이 허망함을 달래고자 나는 다시 공부하기로 했고, 상우의 공부를 내가 대신할 뿐이라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겠다는 마음 뿐이다. 이 마음이 나를 살리고 허탈함에서 나를 구한다.
아직도 화장술이 익숙지 않은 나는, 스무살 학교 도서관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찬 물에 세수를 하고 나오는 길에 만난 내 얼굴을 가장 사랑했던 그 때처럼, 지금도 공부하며 푹 빠진 내 모습과 아우라가 가장 좋다. 오랫동안 이런 시간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모든 것들이 달라져 하나하나 영 해내기 쉽지 않지만 그 무시할 수 없는 저항을 마치 없는 것처럼 가볍게 무시하고, 우직하게 소처럼 곰처럼 공부하기로 한다.
너는 늘 웃고 행복하고 즐겁길 바라고, 나는 이 무식하고 야만적인 시작으로부터 우아하고 세련된 그 날을 맞이할 때까지 밤낮없이 매진하겠다.
대학가 교정을 함께 거닐며 공부에 찌든 말없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비웃었을 때가 있었다. 너는 안그래도 되고 그 고생과 어려움은 내 몫으로 두겠지만 다행히 이것이 내가 기대어 살아갈 길이고 바람이고 행복이니 우리는 서로가 둘 다 윈윈하는 사이 아니겠니.
자식은 하나의 신이다. 너는 나의 신이다. 늘 그 자리에 지금처럼 있어주기만 한다면 나는 무어라도 될 수 있겠다. 힘을 내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