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붉은 벽돌집이 반듯반듯 차곡차곡한 동네로 이사왔다. 각자 조금씩 생긴 모습도 다르지만 대략 50평~60평 정도 되는 땅을 가진 단독주택들은 다행히도 높은 다세대빌라로 증축되지 않고, 이 모습 그대로 다가구주택으로 소심한 개조를 한 채로, 처음 2층 단독주택의 모양새는 그대로 갖춘 채로 정사각형 네모나고 예쁜 땅과 하늘과 햇빛과 바람을 그대로 가진 채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이 동네를 처음 알게 된 건 10여년 전이었다. 서울인가 싶을 정도로 해가 눈부시게 비치던 어느 오후에, 상우가 다닐 학원을 찾으러 이 곳에 왔었다. 강 건너편인 집에서 이 곳에 오는 길이 당시만 해도 참 멀게 느껴졌던 그 때에 비해, 이 곳이 집에서 단지 20분 이동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교통도 좋아졌겠지만, 내 활동반경이 그 동안 참 많이 넓어진 덕분일 것이다. 서른 살이 넘을 때까지 학교와 회사와 집 이외에, 성동구에서 압구정동이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도 몰랐던 나의 반경은 그 사이 정말 많이 넓어졌던 것이다.
단독주택은 복걸복이다. 요즘 짓는 강남의 빼곡한 아파트도 그런 편이지만, 이삼십년 전에 아무 법규 없이 우후죽순 빌라업자들에 의해 점령된 단독주택촌은 정말 햇빛에 복걸복이다. 내 본가가 그러했다. 좋은 쪽이라면 좋았겠지만, 어쩌다보니, 어릴 적 정남향 하루종일 햇살 가득하던 우리집은 도로 건너편의 단독주택들이 모두 빌라업자들에게 팔리며 5~6층의 다세대로 건물이 올라서자, 시대에 편승하지 않고 땅꼬마 그대로 일층 주택으로 머물던 우리집이 햇살을 받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 하루종일 딱 한시간 남짓이 되어버렸다. 그 시간은 두 개의 빌라건물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은 거의 영구적으로 고정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집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는데, 우리집 앞 다세대 빌라 라인이었다. 그리고 그 초등학교 담장길 너머의 낮은 집들은, 높지않은 초등학교 건물 덕에 남향집의 따뜻함과 햇살을 온전히 받고 있었다. 이 또한 영구적으로.
이런 탓에 나는 햇살에 늘 목말라있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고를 때에 비슷한 동네의 단지 중, 건물이 가장 빼곡하지 않은, 그나마 제일 한가하고 제일 동간거리가 넓은 아파트를 골랐다. 그리고 1층 단독주택을 벗어나 4년을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 깨끗하고, 주차가 편했다. 그리고, 해도 잘 들고 조경도 훌륭했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서 창밖으로 나뭇잎과 벚꽃을 보고 놀이터가 보였다. 5미터가 넘는 거실은 작은 3인용 소파로는 부족해서 3미터 소파를 두 개나 가로 세로 길게 해서 횡함을 없앴다. 다만 타워형 집이었다. 4베이의 타워형은 길고 길었다. 가로 16미터 정도 되는 집은 반듯반듯하고 넓었다. 소유한 땅은 11평 남짓이었지만, 집을 차곡차곡 위로 쌓아 지으면 이렇게 넓어지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눈이 오는지도 몰랐다. 집안에 있으면. 벽은 두껍고, 반듯반듯했고, 어느 집이나 구조는 똑같았다. 앞집 옆집 아래 윗집 모두 조용하고 서로를 몰랐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다지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3년쯤 살고 나서야 앞집과 조금 친해졌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래서 이사올 때 부러 초인종을 눌러 작별인사를 드리고 왔다.
이 동네에는 올 때마다 햇살이 쨍하다. 높은 건물이 없다. 커다란 직사각형을 둘러싸고 가장자리는 층고높은 6~7층 건물들이 있지만 그 안 쪽은 2층 벽돌집만 있다. 단독의 특성상 같은 집들도 없다. 조금씩 외관도 내부도 다르고 제각각인 각자 생긴 모양이 다른 집들이다. 집 사이의 골목도, 집들 사이의 도로도 꽤 넓은데, 계획하에 지어진 동네인 듯 하다. 그리고 규제가 있어서인지 높이 지을 수 없다. 물론 이 집들 사이에서도 복걸복인 집은 종종 있다. 단독주택의 운명은 앞뒤 옆집에 좌우하는데, 동네를 다니다보면 꽤 예쁘고 멋지게 공들여지은 2층 저택인데, 집 자체로 보면 단연코 동네에서 제일 멋진 집인데, 불행히도 바로 앞에 5층 빌라가 들어서서 해가 아쉬워졌다. 절묘하게 아쉬운 그런 집들이 종종 보였다.
이사온 집은 종일 집안 내부로 해가 든다. 실내캠을 설치하고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집을 보아도 빛이 안 드는 시간이 없어서 신기하게 본다. 앞집보다 반층쯤 높이 지어져 거실 창밖으로 바로 파란 하늘과 구름이 보인다. 따뜻한 봄밤에 벚꽃구경을 하고 들어오다보면 지붕 위로 환하게 달이 보인다. 해와 달이 눈높이에서 보이던 16층 집에서보다, 달을 찾기 어렵던 3층 집에서보다, 지붕과 전깃줄 사이로 함께 보이는 보름달이 편안하다. 휘둥그레 어리둥절 앞동을 의식하며 커텐을 치던 날들이 언제인지 무색하게, 그저, 편안함만 느껴진다. 그리고 맞통풍의 집은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2.5 *3.5 미터 정도의 아담한 거실은 아기자기하고, 비닐장판의 푹신함과 따듯한 온돌은 소파가 필요없다. 아스팔트같던 강마루에서는 누워있기도 불편해서 늘 소파가 필요했는데, 싸구려장판의 살짝 푹신함과 따듯함은 바닥에 앉아 소소히 간식을 먹으며 드라마 보기 딱 좋다.
각이 맞게 늘 신경쓰며, 거실의 간지를 위해 피곤해도 힘내며 바지런 떨고 다니던 부산함 없이, 여기저기 늘어놓으면 늘 내 손에 닿는 반경 내에 물건들이 있고, 마음은 늘 편안하다.
첫날 상우는 남향의 방에서 서향으로 머리를 두고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좁은 방이지만 방마다 내 크고 작은 책상과 침대와 피아노는 꼭 맞게 들어갔고,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도 앞뒤로 있는 베란다를 잘 활용해서 배치되었다. 남향 앞집보다 반층 높고, 뒤로는 큰 건물의 뒤란 공간으로 멀찍이 떨어져있어, 햇살과 바람이 잘 드는 이 집은, 복걸복 중에서 복만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기가막히게 좋은 타이밍에 내가 이사올 수 있었다. 며칠만 더 이르거나 며칠만 더 늦었어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쁘게 치우려하지도 않고, 걸레나 청소기를 그렇게 자주 들지 않아도 되고 각 잡아주지 않아도 되고, 해와 달이 보이고 햇살과 바람이 잘 통하는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이 너무 기대된다. 산책하며 발견할 예쁘고 운좋은 집도 기대되고. 아마 꽤 오래 이 동네에 살게 될 듯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