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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Aug 14. 2017

피아노라는 애증

There is a fine line between love & hate

  "교수님께 피아노는 어떤 의미예요?"

  "글쎄요. 제게 피아노는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피아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반 쯤 지나 여쭤본 답은 '애증의 관계'.

  아직 나에게는 무덤덤한 피아노 라는 존재.

  아직까지 밉지는 않은 걸 보니 아직 가야할 곳까지 못 가 본 듯 하다. 때로 너무너무 음악이 좋고 경이롭고 피아노음악이 좋을 때가 요즈음 들어 잠깐 잠깐씩 있긴 한 것 같다.

   언제쯤 피아노에 '애증'을 느끼는 날이 올까?


    백석 컨서버토리에서의 첫번째 전공실기 위클리 수업 시간이었다. 학생들 연주에 앞서 바이올린 전공의 교수님이 중고교시절 이야기를 하신다. 지방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로 유학와서 만난 학생들의 실력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며, 음악을 하기 위해 가져야할 마음가짐 중에 '상처를 극복하는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직 음악에 고통을 느껴본 적 없던 나,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교수님, 전 음악공부하는 게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거든요. 어째서 교수님께서는 상처를 극복하는 마음가짐을 필수로 생각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왜 그래야하죠?"

  내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신 교수님..

  썩 납득이 갈만한 답을 못 주셨다. 그저... 음악실력에 있어 등수가 매겨지고, 오케스트라 에서도 바이올린 파트에서 앉는 순서가 실력순이라는 등의 경험담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한 편으로 잔인한 일이지만 한 편으로 무척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상처를 극복하는 마음가짐'을 알기에는 겪어보지 못해서인지 부족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교수님 마음에 연타를 날린 사람이, 내 학교생활선배이자 멘토가 되어주신 학우님이었다.

행복에 찬 표정으로 연주곡을 설명하는 학우님

     위클리 연주수업이 시작되고, 연주자가 앞에 나와 연주할 곡에 대해 잠시 설명하는 시간 중에, 언니도 나와 같은 말을 했다.

  " 아까 교수님께서 음악을 하며 상처를 많이 받으셨고 그것을 극복하며 지내야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지금 제 나이에 음악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기쁘답니다. "

  라고 말한 후 리스트의 '탄식' 을 열심히 연주했다.


아, 교수님. 뭐 씹은 표정으로 얼굴이 좋지 않으셨음을 안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지... 아니 그걸 왜 모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 날의 우리 둘이 어쩌면 상당히 무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음악을 즐기는 아마추어와 음악에 생을 건 프로의 차이였는지 모르겠다.  음악 이 좋다는 하나만 생각하고 이제 막 발을 내딛은 하룻강아지와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고 생업으로 삼기로 결심하여 40년 이상 음악에 몸담아 음악계의 온갖 사람의 이야기도 잘 알게 된 마에스트로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할수록 향기가 나는 순수한 음악의 기쁨도 있는가하면, 오래될수록 악취가 풍기는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과한 욕심, 명예에 대한 집착도,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듯이 음악의 길에도 존재할 것이다.  

  

     20 여 년 전, 갓 신입사원의 활기로 웃으며 인사드렸을 때, 안경 너머로 날 빼꼼히 쳐다보며  "왜 이런델 왔어?" 라고 그 패기를 비웃듯 질문하던 회사선배 한 분이 계셨다.

    아아, 난 이제 너무나 슬프게도 그 때 그 선배의 물음을 이해한다. 체험했다. 맞아. 그 온갖 진리를 담고 있던 그 한 마디. 가끔씩 떠오른다.  


    그러나 잘했든 잘못했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다. 모든 책임도 나에게 있고. 스스로 그 상처를 감싸안아 치유하고 버틸 용기도 내게 있다.


    음악은. 아직까지 내게 기쁨이다. 먹고 살고자 명예와 욕심을 지키고자 물어뜯어본 경험에 처해본 적이 아직까지 없다. 부디 그런 경험은 앞으로도 없기를, 너만은 내게 순수함으로 남아주길 간절히 바래어본다.

   

     가끔 치고싶지 않은 곡을 연습해야할 때 교수님이 슬쩍 띄워주시며 "아 이제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니까요. 프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곡도 연주해볼 수 있어야죠" 라고 부추기신다.

     몇몇 단계를 넘어 조금은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으쓱하며 악보를 차분차분 읽어본다. 조금 치기 싫은 종류의 곡을 연습하는 이런 고통 쯤이야 감미로운 정도이다.  

    1년 전 전공실기 수업시간, 나와 같은 질문으로 교수님께 연타를 날렸던 학교 언니와 얼마전에 통화했다. " 아앙.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고 싶은데 말이지, 요즘 그냥 손가락 연습을 하며 터치를 새로 배우고 있어. 너무너무 재미없어~~"

     그래, 음악의 이런 괴로움이야 차라리 감미로움. 음악이지만 음악이 아닌 것으로 인해 느끼는 뼈저린 아픔 따위, 언니와 나에게는 영원히 없었으면 싶다.  

    피아노에 애증이 혹 생기게 된다면, 그 애증은 연습과 곡의 배움으로 인한 어려움에서 나온 애증이기만을 바란다.




    그래, 음악이, 회사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들에겐 잘못이 없다. 순수히 그 본질만 본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함께 하다보면 미움은 필연적일런지 모른다. 어차피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잘 살아보자고 하는 일 아닌가.

    악취가 나는 고통이더라도,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긴 영롱한 고통이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가고자 결심한 길 중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이다. 기쁨만이 본질일 수 없다. 고통을 알게 되는 것은 내가 더 깊이 다가갔다는 증거이다.


    어쩌면 애증은,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널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고통 때문에 널 만나서 느낀 기쁨까지 나에게서 빼앗을 순 없다. 그저, 좋은 것만 생각하자. 다시 일어나 달려가야 하니까.


그냥 지나치기엔 글이 너무 좋았다.                                <예술의 전당 서예관 간다라 미술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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