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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Aug 31. 2017

연습에 대하여 1: Playing the Piano

과정을 즐기는 연습을 통해 오늘의 삶을 사는 법을 배우며

    정답이 없는, 대한민국 여자 직장인의 30대를 지나오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음악이었다. 일과 육아로 지친 날 밤, 아이를 재우려다 문득 피아노 앞에 앉고 싶어졌다. 어릴 적부터 모아온 피아노 피스와 악보들을 펼쳐놓고 되든 안되든 주욱 몇 곡을 연주해본 후 잠을 청한 다음날 남긴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어제밤엔 마음이 너무 허해서 피아노를 쳤다.

   예쁜 아이가 엄마에게 피아노를 쳐도 된다고 했다. 아침이슬, Love of my life, 바흐 인벤션 1번,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Love affair, 영화 피아노 OST 중 한 곡을 치고는 Butterfly Waltz를 쳤다. Walk in the Forest까지 치고 있으려니 아이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만 치고 내려오려니 더 들려달란다..

피아노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채워졌다.'


   오랜만에 그 때 끄적여둔 글을 읽는데 감회가 남다르다. 이제는 훌쩍 커서 소년이 되어버린 아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가끔 사진을 보며 그 때를 회상한다. 당시에는 끝날 것 같지 않던 매일의 반복이던 30대가 지나고 지금의 여유가 생긴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아이가 아이이던 시간에 온전히 함께 많은 시간을 못 보낸 것은 오래도록 슬플 것 같다. 이 마음으로 할머니가 되어 우리 아이의 자식들. 내게는 손자 손녀들을 만난다면 그 아이들은 얼마나 예쁠까. 못다한 소망들을 다시 한 번 꿈꾸어본다.



     

   내게 피아노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주르륵 곡을 훑고 멜로디를 들으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기쁨이었는데, 학교에서 연주곡을 배우는 일은 그렇게 피아노와 함께 노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곡의 마디마디를 수없이 반복하여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하나의 곡을 완성해야했다. 힘들고 어려웠다. 학교에 다시 입학한 후 3학기 쯤 지나고 나니 시험과 수업, 사람들 앞에서 들려주어야 하는 연주에 대한 강박이 심해졌다. 한 숨 돌린 느슨한 방학이 끝나고 개강일이 다가오니, 다시 그 압박감에 시달릴 두려움에 수강등록을 해야할 지 말아야할 지 이만저만 고민되는 것이 아니었다.

    

  방학레슨을 신청하고도 몇 주 째 연습을 제대로 안해가고 시간을 때울 생각만 하는 모습을 보고 교수님이 요즘 어떤지 물으신다.

   '실력은 너무 하찮은데, 곡을 사람들 앞에서 들려줄만한 수준까지 가는 일은 마치 태산을  바라보고 서 있는 티끌보다 작은 사람같다' 고 하소연했다.

 

   몇 주 전만 해도 피아노 휴가(아직 못 다녀온 여름휴가를 연습실에서 보내는 일)를 권하시던 교수님은 지금 상황이 그렇다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보자고 하셨다.

   매우 솔깃했다. 음악을 하면서 생기는 인내와 의지, 곡을 완성해보리라는 목표와 성취의 기쁨을 강조하시던 말씀은 사라지고, 앞으로 한동안 압박감 없는 편안한 시간을 지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이는 말씀이 있었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난 못할 것이라고, 학우들 앞에서 교수님들 앞에서 창피만 당하고 말 것이라고, 또 한 번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순간을 참아야만 할 것이라고, 연습을 해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습은 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던 내게 그 말씀 한 마디가 깊게 와 닿았다.


 나는 방관자인가. 참여자인가.

 내 인생과 내가 정한 일에 주인공인가 관찰자인가.

 머언 눈길로 나의 삶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관조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직접 그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온갖 것을 느끼며 깊이 울고 환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인가.


   처음 학교에 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던 때가 있었다. 멋도 모르고 음표만 맞게 치면 되었던 시간과 타인 앞에서의 연주 라는 긴장된 시간들을 겪어왔다.  집과 회사라는 반복적인 일상의 매너리즘에 젖어있던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시간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다시 일상이 되어 매너리즘에 빠지고 음악공부의 주객이 전도되어 남들 앞에서 보여지는 순간의 결과에만 신경쓰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늘 처음 그 마음처럼.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과정 안에 푹 빠져서 살아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관조하게 된 것 같은 삶이 싫어 택한 음악공부마저 그렇게 되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연습 과정이 지루하고 어려워보이고 안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푹 빠져있지 않아서이다. 내일일을 걱정하며 기다리지 않고, 오늘의 하루 연습을 즐기는 것이 내 삶을 진짜 사는 일이다.

    언제나 삶의 힘들었던 순간 음악이 가져다주었던 기쁨과 위안을 떠올리면, 내게 얼마나 이것이 필요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과정이 고난하다고 하여 공부하고자 한 결심을 번복하는 것도 곧 후회할 일임을 깨달았다.  여력이 닿는 한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연습의 즐거움을 상상하며, 내 생생한 삶에 푹 빠져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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