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이 저문다는 것

by 빛기



축구를 오랫동안 보다 보면 내가 좋아하고 응원했던 선수가 팀을 떠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때의 허전함과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3년 전 오랜 시간 좋아했던 팀을 더 이상 응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중학생 때부터, 이제는 내 정체성의 일부로 떼어낼 수 없는 연고팀은 계속 응원하고 있는 중이다. 그 팀에 대한 애정도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깊어져서 때때로 괴롭기까지 하다. 팀이 뼈아픈 패배를 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일 때는 가끔 문득, ‘차라리 축구가 주는 재미를 몰랐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나처럼 축구팬으로 살아온 인생이 길다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축구에는 낭만이 있다. 선수와 팬들이 모여 만들어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축구가 선사하는 다채로운 메시지와 번번이 날 실망시킨다 해도 다시금 새롭게 날 일으키고 기대하게 만드는 에너지에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면 이제 응원하는 팀, 애정하는 선수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이다. 그 세월 동안 변화는 계속 찾아온다. 팀이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감독과 선수 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서로 원하는 방향이 다른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오해와 갈등은 계속 생겨나며 그에 따른 불화로 감독 또는 선수가 팀을 떠나거나 자신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거나 멀리 내다보는 시점에서 선수가 직접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간혹 그 선수가 팀의 정체성과도 같은 존재일 경우 흡사 연인 간의 헤어짐보다 더한 절절함과 애틋함으로 곱씹고 어루만지게 되는 이별의 장면을 축구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애정하는 선수가 부디 그 이별의 주인공이 아니길 바라지만 최근에도 내가 참 많이 아끼던 선수가 팀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차마 끝까지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던 이별이 또 한 번 더 있었는데 바로 손흥민 선수와 이제는 그의 제2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토트넘 사이의 이별이다.


이젠 가늠하기도 까마득해져서 정확히 언제라고 짚어낼 순 없지만 오래전 처음 봤을 때의 그는 국가대표 안에서도 거의 막내였다. 손흥민 선수의 존재가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된 건 함부르크에서 뛰던 시절이었다. 비버 같은 동물을 닮은 유순한 얼굴을 하고 분데스리가에서 국위 선양하기 시작한 그를 축구팬인 친구들과 함께 덕질하며 좋아했다. 친구를 따라 함부르크로 편지도 보냈던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귀여운데 멋있기까지 하고…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으며 축구를 해온 성장배경을 알게 된 후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 매 순간 진심으로 축구에 임하는 것 같던 그는 툭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표정을 지어서 유독 마음이 쓰이는 선수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대형(토트넘 팬들에게는 대환영 덕통) 사고를 치고야 만다. 내가 열렬히 응원하던 아스날이라는 팀의 숙적인 토트넘으로 이적을 하게 된 것이다. 토트넘에서도 그의 열심은 그칠 줄 몰랐고,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기적적인 축포를 쏘아 올리며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했던 엄청난 활약을 하더니 결국 주장 완장까지 찼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토트넘하면 단박에 ‘son’이라는 선수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토트넘에서 보낸 10년 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한국에서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사실 그때 나는 마침 외출을 해야만 했던 약속이 있어서 경기를 보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 손흥민 선수의 팬이었던 친구의 다급한 디엠과 실시간으로 쏟아져나오는 소식을 접하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울보인 그의 촉촉한 눈가가 유독 더 가슴 아프게 박히는 사진들을 훑으며, 덩달아 코끝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따라 많은 팬들이 울었고 조국인 한국에서의 last dance가 된 뉴캐슬과 토트넘의 경기는 아마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 될, 가슴 적시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의 축구 인생이 여기서 막을 내린 것도 아니고 전설이 된 그의 역사는 계속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10년이란 세월 동안 토트넘이라는 팀에서 겹겹이 쌓아온 그의 우정과 사랑과 헌신, 믿음.. 그 모든 서사를 알고 있다면 압도될 수 밖에 없는 이별의 아픔인 것은 분명하다. 아마 우리는 그가 삼켰어야 할 감정의 절반도 채 느끼지 못한 것일 테지만 축구팬이라면 덩달아 마음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의 어떤 한 시절이 저문다는 것. 저 멀리 빛나던 누군가의 시절이 저무는 순간이 아득하게 멀어보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다지도 붉고 푸르고 선명하게 가까운 것인지. 태극기를 두른 채 조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충성을 다했던 그가 또 얼마나 토트넘이라는 팀의 기둥 역할을 해내기 위해 부담을 지고, 그 부담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두려움에 맞서며 달려왔을지가 훤히 보였기 때문일까.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안고 갈 수 없게 된, 너무나 사랑하는 팀을 놓아야만 하는 순간에 그가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시리게 슬프다. 그는 언제나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감당해왔다는 사실도 새삼 뭉클하게 와닿는다.


왜 영원할 수 없을까. 모든 괴로운 순간이 과거가 된다는 것은 크나큰 다행이며 위로이지만, 아름다운 순간도 너무나 빠르게 우리의 등 뒤로 밀려나 있다. 언제 우리가 앞섰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자꾸만 나를 앞으로 데리고 간다. 행복했던 나날들이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절로 기억 속에 꽁꽁 얼어버린 채 멈춰있다. 우리가 함께 열광했던 그 시절의 미미한 온기를 떠올리며 애써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게 새삼 춥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토트넘에서 썼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빼곡했던 만큼 시절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웠을까. 저마다의 운명에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자신을 흠모하며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그의 삶이 훨씬 무거울 것이다. 그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가볍게 살아갈 수 있었던 나조차 인생의 한 시절을 맺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결코 쉽지 않았었다. 모두가 화려한 조명을 비추며 그를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손흥민 선수의 찰나까지도 떠올려본다면 그가 마주한 토트넘과의 이별이 꽤나 서글프다. 평생 마르지 않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 그를 떠올리면 내가 다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근데 팬들까지 오래 슬퍼하면 그는 또 팬들 몫까지 더 오래 아파하고 슬퍼할 사람 같아서, 이제 이 글을 끝으로 눈물을 좀 그쳐보기로 한다. 더 이상의 과몰입을 멈춰보기로 한다. (ㅠㅠ토트넘 팬도 아닌데 자꾸만 슬퍼진다… 미국으로 간 것도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북중미 월드컵 잘 준비하려고 간 것 같고… 아직 은퇴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을 울게 만드는 것도 정말 난감할 지경이다… 그의 눈 밑 눈물점은 어쩌면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게 될 운명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쁨의 눈물이 더 많을 걸 알아요... ㅠㅠ 파이팅!)


그는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금 눈물을 쓱쓱 닦고 씩씩하게 웃으며 팬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는 얼굴보다는 사실 웃는 얼굴이 예쁘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그렇게나 무거운 운명을 짊어지고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라운드 위를 쌩쌩 날아다니는 노련하고도 능숙한 드리블을 보여줄 것이다. 또 다시 골망을 흔들며 팬들에게 짜릿한 설렘을 가져다주고 그를 보기 위해 로스 앤젤레스 행을 결심한 팬들에게 또 다시 손흥민의 팬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줄 것이다. 번번이 태극기 앞으로 달려와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엠블럼을 가리키며 감사를 전할 것이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하기로 한 그의 용기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경의를 표하고 싶다. 희노애락 범벅인 그라운드 위를 90분동안 녹초가 될 때까지 마음으로나마 함께 나뒹구는 축구팬으로서, 축구와 이어진 그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그가 축구를 하는 동안 눅눅해진 마음의 깊은 구석까지 새로운 볕이 들고 무지개가 뜨기를 기도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축구 때문에 울고 웃는 축구팬들에게도 따뜻한 포옹을 전하고 싶다.. 비슷하거나 꼭 같은 장면 앞에서 웃어보고 울어도 봤던, 나와 닮은 표정을 지어본 당신들을 계속해서 꼬옥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