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닥 온순하지 못해~' 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Monster'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다. 사실 난 바깥에서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인간이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가족들에게는 온갖 짜증과 화를 터뜨리고, 밖에서는 이 욱하는 성질을 잘 참고 사는 괴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365일 24시간 내내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족들은 나의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 지붕 아래 부대끼며 사는 동안 '쟤가 또 지랄이네' 하며 서로의 성질을 꾸역꾸역 받아준 역사가 있고 품어주며 쌓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나의 본성을 가족들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그러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바깥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는 꾹 눌러서 참는 편이다. 굳이 참지 않아도 왠지 모르게 남들한테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에게 이렇게 넓은 아량과 인내심이 있었구나.. 새삼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다. (과거의 어느 날 친절한 언행이 귀감이 되었던 한 직원분이 내가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는지 가족에게 전화로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남한테 잘하고 가족한테 못하는 게 너무 별로인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도 너그러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력의 결과 아빠랑은 전보다 훨씬 덜 다투며 지내고 있어서 나름 성과는 있다.)
내 성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척이나 성미가 급하다는 것인데 간혹가다 이 급한 성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비죽 새어나올 때도 있다. 특히 pms 증후군이 도진 기간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바깥 사람들에게도 내 안의 난폭하게 날뛰는 들소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발굽을 디미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슬아슬한 기분이 된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치솟는 감정을 다스리며 이성을 재정비해야 하는 때가 많아서, 이만하면 잘 훈련이 됐다 싶으면서도 어떤 날엔 나의 뾰족한 모서리를 들키기도 한다. 그 모서리에 아이들이 스치고 베이지 않게 최대한 조심해보려 무진장 애를 쓰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끝끝내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좁혔던 미간이 풀리며 금세 마음이 허물어지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자주 내 안의 부릅뜬 눈을 한 자아와 맹렬히 맞서며 전투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 자아가 해방되는 순간은 정말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순간인데, 내가 절대 참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규범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사람을 봤을 때다. 최근에는 윗집에 사는 여자분이 자꾸 쓰레기를 무단 투기해서 건물 입구 현관에 쌓아두는 걸 보고 집주인께 그 증거로 남긴 사진을 전송해서 주의를 주실 것을 부탁드렸었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우리집 앞 cctv에 그 여자분이 투기하려는 쓰레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찍어서 또 다시 임대인분께 장문의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래도 또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곧장 윗집으로 찾아가서 노크를 하게 될 것 같다. 그 정도로 참다가 폭발하면, 와르르 쏟아내는 스타일인데다가 사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사람들과 둥글게 둥글게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물러나지 않으려 하는 성깔머리도 있다. 그 일화 중 하나는 사이비 종교를 포교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편의점 앞에서 한 남자를 붙들고 놔주지 않던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내가 편의점에서 뭘 살지 고민하는 10분 넘는 시간 동안 그 남자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오지랖을 부린..) 사이비 포교자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서 말싸움을 벌였던 적이 있다. 함께 있었던 여동생 말로는 진짜 내가 또라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원래 또라이를 상대하려면 똑같이 또라이가 되어 대적해야만 하는 법...
최근에는 그런 내 성질머리를 반성했던 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쿠팡에서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갈아줄 모래를 주문하고 배송이 도착했다는 메세지에 확인해보았더니 모래가 한 개밖에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갈아줘야 하는 시기가 다 돼서 주문한 모래이기도 했고 6l짜리 모래 봉지 하나로는 화장실 한 개를 가득 채울 수가 없어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린 게 점점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담원에게 문의를 했더니 남은 1개를 따로 배송해주는 것이 아니라 교환 신청을 하고 잘못 도착한 모래가 수거된 후 모래 2개를 수량에 맞게 다시 배송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처리 절차도 그렇고 배송을 담당한 사람의 실수로 화장실 청소를 하루 뒤로 미루게 된 것이 그 순간에는 좀 답답했다. '아니, 어떻게 2개인 수량을 1개로 보낼 수 있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때는 교환 신청을 하는 것조차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게 느껴지던지. 상담원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메세지를 보낼 때의 내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그러자 상담원분께서 상담을 마무리 지으면서 '아무래도 채팅으로 쓴 문자다 보니 제 상담이 딱딱하게 느껴지셨을까봐 염려가 됩니다~'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잘못 배송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 걱정과 유감을 표현해주셨는데 그때 내가 상담원분께 보낸 메세지도 딱딱하고 매정하게 느껴졌겠구나 싶어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의 상담에 대해서 내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닐지 전전긍긍해하는 그분의 마음이 느껴져서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있던 자리에 미안함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나는 특히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된 노동을 강요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쿠팡 상담원으로 일했던 지난 룸메이트 언니의 고충도 들어본 적이 있는 터라 '그들에게는 훨씬 더 상냥해야지. 그들의 입장을 더 너른 마음으로 배려해야지.'하고 다짐했으면서도 막상 일이 생겼을 때는 약간의 손해도 못 견뎌하는 이기심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만 것이다. 죄 없는 상담원을 탓하며 벌컥 화를 내지는 않았더라도 그때 잠깐 느낀 짜증과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여전히 인간이 덜 되었구나.. 여전히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은, 여기저기에 생겨난 까슬까슬한 보풀을 다른 사람들에게 묻히고 다니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 아득해졌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한 사람들의 성화로 인해 가슴에 울화가 깊이 맺혀있을 그분들은 어떻게 그 고통을 놓아주며 살아가고 있을지 마음이 쓰였다. 내가 잘못한 일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나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도 상대가 쏘아올린 분노의 화살을 맞게 되었을 경우, 그때 느끼게 될 모멸감과 수치심 앞에서 그분들처럼 상대를 더 생각하며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로 시작되는 말로 변명하기 급급한 평소의 내 모습, 누군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억울한 내 입장을 전달하는 게 우선인 내 달뜬 성미를 돌이켜 보건대 떳떳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수련은 앞으로도 한참의 세월이 더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성마른 인간이 온화한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눈물 겨운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디게 더디게 나아질 것이라 믿으면서, 며칠 전 저지른 과오를 깊이 참회해본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동안 내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떠올리지 못한, 누군가의 일그러진 하루와 울상이 된 얼굴을 기억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