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는 알게 되면 알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진실이 있다. 그리고 목격하게 되면 절대로 그것을 보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장면들이 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끝없이 영향을 주는 존재와의 만남과 내 안에 오랜 시간 쌓아올린 견고한 무언가가 완전히 붕괴되어버리는 사건도 있다. 30년 정도의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앞서 언급한 것들에 대해 모두 다 답을 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삶엔 결정적인 이벤트, 터닝포인트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찾아온다. 그것이 반가운 손님처럼 방문하거나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산새를 발견하듯 기쁜 소식으로 날아들면 좋겠지만 때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 마는, 삶의 생기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 고작 며칠 사이에도 수십 건의 재난이 전국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로 치면 그 건수가 더 어마어마할 것이다. 숫자로만 납작하게 읽혀지는, 이제는 너무나 많아서 점점 무뎌지기까지 하는 사건, 사고의 횟수 앞에서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참담한 심정으로 기사의 스크롤을 내리거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면 피해자를 위한 모금 운동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기사의 링크를 공유해 사건을 알리거나, 국민청원에 참여하는 정도로는 사건의 당사자가 겪을 고통과 슬픔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 일을 맞닥뜨리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또 견뎌야 할 세월을 보내야 하고,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을 경우 언제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를 막막하고 어두운 터널이 펼쳐진다.
나 또한 부모님이 당했던 보이스 피싱의 여파로 생활고에 시달렸고 전에 없던 우울증을 미약하게나마 앓았다. 왼쪽 시력을 아예 상실할 만큼의 큰 교통사고를 당한 아빠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폭풍우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얼마나 처참한 폐허가 될 수 있는지를 느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재건하기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리며, 다행히 아빠는 목숨을 부지해 남은 한쪽 눈으로나마 살아갈 수 있었지만 목숨까지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극도 언제든 우리의 삶을 삼켜버릴 수 있었다.
2년 전 외출 도중,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느닷없이 나타나 내 허벅지 안쪽을 물어 뜯은 강아지로 인해 나는 길에서 쫑쫑 걸음으로 지나다니는 강아지들을 내심 귀여워하면서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었는데 이제는 얼어붙은 채 강아지가 지나가는 동안 숨을 참는다. 작다면 작은 사고일 뿐이었던 강아지에게 물렸던 그 날의 일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결국 과거가 되고 기억으로 남는다 해도 평생을 그 기억에 붙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들의 기억이 내 것이 아니라 해도, 먼 자리에서도 느껴지는 그 억울함과 원통함이 이다지도 무겁고 깊은데 어떻게 쉽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천천히 잊게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맨숭맨숭한 얼굴을 바라보며 때로는 또박또박 말하고 싶다. 불행의 그늘이라고는 한 번도 드리워져 본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깨끗하고 맑은 당신의 얼굴이 참 부럽다고. 그런 얼굴로 전하는 당신의 밍숭맹숭한 위로는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고.
그렇게라도 흠집내고 싶은 다행을 넘치게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다행인 삶을 자연스럽게 누리며 살아가는 게 손가락질 받으며 욕 먹을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가지게 된 불행을 두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해프닝쯤으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피해자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똑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처럼 어쩔 수 없다는 듯 회피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겐 환멸이 난다. 그들의 무관심이 예고된 위험을 방치하고 거듭된 참사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아 계속해서 재발시키는 이 사회의 구조를 공고히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물론 그들이 저지른 일도 아니고 사람들마다 자신의 신념과 방식대로 살아갈 자유가 있다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에워싼 산소가 줄어드는 듯한 답답한 통증을 준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159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를 대응하기 위해 출동했던 소방관 두 분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그들의 시간은 2022년 10월 29일에서 더디게 흘러가지도 못하고 영원히 멈춰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얗게 질려버린,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리고 앳된 얼굴들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고 미동도 하지 않는 희푸른 몸들이 거리에 빼곡하던 그날의 밤이 되풀이 되며 찾아왔을 것이다. 사실 그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겹쳐본 사람이 아닌, 그날 그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나 다름 없다. 다른 소방대원들과 함께 사고를 수습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시금 그 현장으로 돌아가는 악몽을 꾸었을 것이다. 생존했지만 마음에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홈이 패어버린 채, 그곳에 고이는 감정이 표면까지 찰랑이며 그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었을 것이다.
작년 연말에 일어난 무안공항 참사 또한 삼천 여 명의 소방대원이 투입되어야 했을 만큼 끔찍한 인명 피해가 있었다. 수습에 나선 소방대원들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할 충격에 빠진 상태에서도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더 이입하는 모습이었다. 강아지 한 마리만 남겨둔 채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는 등 가족 단위의 탑승객이 많았다는 사실과 시체의 훼손이 심각했다던 그날의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의 참혹함을 목격한 후의 그들은, 사실 더 이상 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당연히 누리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하고 그리운 애틋한 일이 된다는 게 점점 불안해지지 않았을까. 나 또한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통해 여객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히며 폭발하던 그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이후로 한동안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SNS 피드에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오르내렸다. 살아있는 동안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었는지 그들의 서사를 마주할 때마다 아려오는 마음 너머로 파동이 일어나듯 번지던 의구심은 점차 확신으로 또아리를 틀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열심히 살아도 결국엔 다 허망하게 죽는구나. 삶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르던 날들. 송구스러움에, 무력함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막내 삼촌이 심장마비로 떠난 후 한동안 나의 세상이 모두 잿빛으로 물들던 시간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쁜 리본으로 포장을 하듯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내가 끝까지 부정하며 맞서 싸우고 싶은 것이 바로 생의 무의미함이었다. 하지만 그저 순하고 연하게만 살아왔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 불의로 얼룩지고 안타까운 죽음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을 보며 결국 삶의 무상함을 수긍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기적을 믿을 수 없게 되고 현실로부터 붕 떠버린 채 미래조차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며 지독하게 병들어갔을 그 소방대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동안 국민들을 위해 일하느라, 떠난 이들의 중얼거림을 듣느라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물음에 대답하느라 참 고생이 많았다고, 이제는 그 괴로움과 헛헛함으로부터 완전히 놓여나시라고, 훨훨 떠나가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평소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에 속하고 나에게 벌어진 골치 아픈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 충분히 멘탈 훈련이 되어 있던 나도 마음에 병이 들 때가 찾아온다. 지금 그 병에서 완전히 나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계속 진행중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삶의 밝은 면으로, 햇살이 잘 드는 쪽으로 애써 나를 이끌며, 내 손을 함께 잡아주고 끌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아가고 있지만 내 등 뒤로, 내 옆으로 누군가의 삶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앞만 보고 나아갈 수가 없다. 나 혼자서만, 내 가족과 내 친구들만 절대로 깨지지 않는 평화가 지켜지는 유토피아에 도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유토피아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바쳐졌을지 가늠하면서 머무는 그곳은 내게는 절대로 낙원이 될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댓가를 고통 받은 자 대신 누리는 일은 저주이자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다.
한편으로는 무사무탈한 내 일상이 참 커다란 행운이라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그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저리다.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면 이불처럼 구겨지는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어제로부터 영영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고 만약 돌아왔다고 해도 오랜 시간 뒤척여야 할 만큼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밤의 풍경에 떨고 있을 사람들. 매일 잠들기 전 그들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밤의 짙고 캄캄한 어두움을 내가 결코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영영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까?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언급되는 전세사기(이 또한 겪었으나 운 좋게 6개월 정도 고생한 끝에 탈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세사기는 진행중이며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살기 위해 마련했던 공간에 자신의 유서를 놓아두고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있다.) 간병살인과 데이트 폭력, 산업재해 등의 인명이 달린 사건, 사고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나는 간신히 저 쌓여가는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구나, 숫자 너머 가려진 누군가의 얼굴과 그가 보냈을 하루를 더듬어보게 된다. 꼭 잡히지도 않는 그 형체 없는 죽음이 다음 표적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다. 발자국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선명해지면 결국 도망도 칠 수 없게 되는 거구나. 한번 들은 그 소리를 영원히 기억하게 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아득함에 질식할 즈음 결국 삶으로부터 도망쳐버리는 거구나.
이 세상에 더 이상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살아갈 이유가 없어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불행은 랜덤으로 당첨되는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살아가는 모두가 반드시 인재를 겪게 될 것이란 예언을 하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영영 집으로, 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 내 곁의 사람들을 꼭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외로움과 서글픔, 후회와 죄책감에 옥죄어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원한다. 멀리 있는 듯하지만 결코 멀리 있지 않은 사람들. 나와 닮아 있고, 나도 닮아갈 수 있는 사람들. 하루에도 수십번 내 곁을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기 위해 나처럼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열고 닫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되새긴다.
내 인생까지 반짝반짝 윤이 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이웃들을 위해 좋은 일엔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엔 함께 슬퍼하는 일 정도는 거뜬히 해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주저 앉히고 통곡하게 만들었던 숱한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버린 삶 속에서 휘청일지언정, 무너질지언정 다시금 서로를 일으켜세우자고 약속하고 싶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당신에게도 손가락을 걸고, 내게 주어진 인생 동안 당신의 몫까지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늘에 편지를 부쳐본다.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분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고, 또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