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삶과 가까운 사람들

by 빛기


동생과 지하철을 타다가 지하철 문 틈 사이로 지갑을 떨어트렸다. 떨어진 지갑을 당장 구해내려면 열차 운행을 멈춰야 하므로 지하철 운행이 끝나면 찾아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했다. 내 지갑이 모든 사람들의 이동을 막을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무사히 지갑이 돌아오길 바라며 동생의 교통카드를 빌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에 지갑을 무사히 찾았으니 가지러 오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지갑은 하루만에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왔다. 만약 지갑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신분증부터 사용하는 카드까지 하나하나 처리해나가야 할 일들이 상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최근에 선물 받은 립스틱, 제일 좋아하는 시의 글귀가 적힌 책갈피 등등을 잃었을 거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벌써부터 허전하다. 하지만 나는 지갑을 찾아주신 역무원 분들 덕분에 무사히 지갑을 들고 보통 때와 다름 없이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대답을 해주셨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지갑을 잃었던 날 서 있었던 4-3 구역 앞에서 내 지갑 하나를 찾기 위해 스크린 도어를 열고 선로 사이를 기웃거렸을 누군가의 새벽을 떠올린다. 그 시간에 그의 곁에 함께 있을 순 없었지만, 생생하게 그 장면을 더듬어본다. 그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내가 잠든 사이잠도 잊고 밤새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후 그 사실은 내게 깊숙이 다가왔다. 나 또한 새벽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되어본 적이 있어서다.



물류센터에서 밤새 부지런히 사람들이 주문한 물건들을 카트에 담아 나르는 일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퇴사 후 최소한의 생활을 이어나갈 돈이 필요했고 평소 돈이 되는 일을 찾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사촌동생을 통해 그 일을 소개 받았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일이 끝난 후 육체적 피로가 쌓이긴 했어도 언제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직장을 구한 후에도 주말마다 틈 나는 대로 가서 일을 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어서 책임감에서 놓여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생각을 비우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렸다. 실제로 짭짤하게 돈도 벌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얻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내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는 무언가가 그곳엔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망각할 수 없는 몸으로 새겨지는 가르침. 또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밖에서도 만날 만큼, 서로의 안부가 계속 궁금하고 그 공간이 그리워질 만큼 생각만 해도 애틋하고 뭉근해지는 기억을 공유한 인연이 생겼다. 그들은 내게 시절연인으로 남았지만 그 시절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나라는 경계 밖으로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겹쳐진 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이로움을 자주 놓치며 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잠들기 전 누군가 휴대폰을 켜서 쇼핑을 하다가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들을 ‘주문하기’ 버튼만 누르면, 그 리스트가 내게 전송이 되었다. 그러면 그 물건들이 위치한 로케이션이 앞으로 가서 물건을 하나하나 카트에 담아 레일에 태워 보내는 게 나의 주된 업무였다. 레일 가득 채워진 물건들이 8시간 내내 의자 없이 일어선 채 포장하는 일을 맡은 직원들 앞에 놓이면 박스나 봉투로 동봉된 후 트럭에 실렸다. 레일을 타고 멀어져가는 카트를 멀거니 바라보며 물건은 내 손을 떠났지만 새벽 배송을 담당한 기사님들이 무거워진 눈꺼풀을 애써 밀어올리며, 언제쯤 줄어들까 막막하게 쌓인 택배 박스를 밀어올리며 곤히 잠든 사람들의 집 앞에 도착하는 장면을 거듭 상상했다. 그것이 나의 상상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가끔 새벽 6시 퇴근길에 배송 기사님들과 마주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또 내가 마주쳤던, 늦은 새벽 잠들지 않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와 낙엽을 빗자루로 삭삭 모아 정리하는 청소부 아저씨였다. 겨울에는 가로등 빛이 그다지 위안이 되어주지 못할 만큼 짙은 어둠이 사방에 깔려있다. 그때 밤의 장막을 헤집고 묵묵히 움직이는 빗자루 하나가 보이면 나는 금세 안심하고는 했다. 그런 청소부 아저씨의 모습이 내겐 어둠을 밝히는 또 하나의 등불처럼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 등불은 아침에도 꺼지지 않았는데, 깨끗해진 거리를 걸으면서 세상 모든 게 맑고 깨끗하게 내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신의 흔적까지 지워내며 열심히 일했던 청소부 아저씨 덕분이었다.



새벽에 근무하기로 결정한 건 단순히 그분들의 선택일 수도 있으나 조금이라도 더 붙는 야간수당을 받기 위해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잠들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잠을 포기한 사람들.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한데 섞여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단함을 온 몸으로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밤새 깨어있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그들의 존재감을 가벼이 지나칠 수 없었다. 새벽에 일하는 육체노동자의 시간을 보낸 이후, 그들이 일하는 순간은 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 육체노동자와 관련된 책이나 뉴스를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생을 블루칼라 업종을 전전하신 엄마, 아빠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 나는 그 말을 교육을 통해 머리로 알고 있었으나 부모님을 통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프로의 정신으로 임하며 살아오신 분들이다. 아빠가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도로에 반듯하게 그어 놓은 차선이 없었다면, 공사장의 신호수로 하루종일 버티고 서서 시간을 보낸 엄마의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아빠가 보이스피싱에 당해 가세가 크게 기울었을 때는 부업으로 목욕탕을 청소하시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새벽부터 일을 나간 후 집에 돌아와 쪽잠을 자거나 허겁지겁 밥을 먹고 다시 일터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모두가 떠나고 없는 목욕탕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목욕이 아닌 막노동으로 때를 빼고 광을 냈다. 언젠가 몇번 아빠가 쉴 때 엄마를 따라 새벽에 목욕탕 청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엄마, 아빠는 무얼하든 진심이라는 걸,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낮동안 내내 몸을 쓰고, 밤에도 자신의 육체와 단잠을 아낌없이 갈아넣는 노동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농담을 하며 웃는 모습에서 오히려 눈앞이 뿌얘지기도 했었다. 다행히 수증기가 가려주어서 들키지 않고 마주 웃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잠든 시간에, 우리 가족들만 깨어있는, 우리만 아는 밤이 있다는 게 괜스레 들뜨기도 했었다. 이 모든 고생이 다 추억이 될 거라 믿으며 버틴 시간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에겐 그런 시간이 참 많았다. 지금은 다 흘러간 시간이지만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면 지독하리만치 길었다.



그래서 아빠는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게 늘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야단이었다. 물론 안 그런 부모님들이 극히 소수겠지만 아빠는 내가 자신처럼 여기저기를 육체의 힘으로 전전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랐다. “공부 안 하면 저런 사람처럼 고생만 하면서 사는 거야.”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길 바랐다.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전문가가 되어 한 회사에 정착해 정년퇴직까지 근속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고, 자신처럼 다른 이의 육체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처럼 살지 말라는 거듭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묻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어때서? 나는 엄마, 아빠처럼 살아가려고 해. 그냥 뭐든 다 최선을 다해 해보려고 해.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내 길을 가려고 해. 그 다짐을 단 한번도 져버린 적 없이 지켜왔다. 그 결과 각광 받고 촉망 받는 일을 하며 눈에 띄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지언정 한번도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게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것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나는 항상 엄마, 아빠라고 대답한다. 아빠는 늘 사회에서 다수가 약속해둔 기준을 거부하고 안정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나를 못마땅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부모님 덕분에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으로 컸다. 내가 오롯이 내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좌우되지 않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건 다 엄마, 아빠의 신념을 이어 받고 지켜온 삶의 태도였다. 내가 대체될 수 있다는 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 믿으며 내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건너다 보면 알 수 없는 세계. 하지만 늘 건너편은 아닌 세계. 그런 세계를 열어준 건 모두 내 엄마, 아빠 덕분이었고 나는 엄마, 아빠를 통해 자신의 육체로만 삶의 무게를 이고 진 채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사실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사람들은 자신의 삶만 지탱해온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의 모서리에서 자신들과 연결된 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새벽의 공기 스며든 채, 얼굴 없는 그림자가 된 그들이 힘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도록, 가질 수 있도록 나에게 안착시켜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집으로 도착할 수 있게, 어딘가 먼 곳으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들. 모두가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으킨 곳에 남아 쓸고 닦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연결된 채 살지 못했더라면 내 삶을 제대로 정돈하고 가꾸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겠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진짜 내 삶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들의 잠들지 않는 새벽을 기억해주는 것. 그 새벽이 무사하기를, 다시 동이 터올 때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주는 것. 좀 더 힘을 써줄 수 있다면 그들이 잠 못 드는 새벽으로 내몰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싶다. 세상의 사각지대에서 웅크리지 않게 해주고 싶다. 눈에 잘 보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주고 싶고, 그들에겐 명찰도, 명함도 쉬이 주어지지 않으니 인사를 나누고 감사하다고 더 자주 말해보려고 한다. 기꺼이든, 기어코든 아무도 되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이 된 사람들. 나에겐 그 사람들이 삶의 은인이다. 그래서 나도 몸과 마음이 온 힘을 합쳐, 내 삶과 그들의 삶까지 붙들 수 있도록 열심히 살고 싶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참고로 화이트 칼라 직종에 계신 분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의 노동도 숭고하게 여기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은근 유리몸이라 병원을 자주 가까이 하는데 의사 선생님들 없었으면 우째 살았을지… 저는 다만 일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일상을 반짝반짝 가꿔주고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는 분들의 노고에 주목하며 글을 썼습니다.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다짐을 담았습니다!���글 속에 불편한 내용이 있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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