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늙은 나의 가족들

by 빛기



우리 엄마, 아빠는 현재 별거 중인 상태다. 그리고 어쩌면 이혼까지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얘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적거나 말로 옮긴다고 해도, 사실 결코 가벼운 마음은 아니다. 이 글은 그 현실로부터 좀 더 가벼워지고 싶어서 쓰게 됐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불화를 지켜보며 살다 보니 마음의 준비를 하며 조금씩 초연해진 것일 뿐이다. 엄마, 아빠는 같은 직장을 다니다 서로에게 반해 연인이 되었고 엄마가 25살, 아빠가 23살인 그 푸릇한 나이에 나를 낳았다. 어딜가나 가족에 대해 언급할 때 동생이 셋이나 있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자식을 넷이나 둔 엄마, 아빠의 금슬이 참 좋은가보다며 너스레를 떨어오지만 그때마다 나는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부모가 되었다는 책임감 하나로 한 가정을 지켜왔지만 서로의 온전함까지는 지켜주지 못했던 엄마, 아빠. 오히려 아이 넷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시간도, 서로의 입장을 헤아릴 여유도 부족해보였다. 그래서 이해했다. 여전히 잘 싸우는 방법, 제대로 화해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들이 서로의 마음에 더 깊은 흠집을 남기기 전에 헤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오래 전부터 지켜봐온 둘의 갈등, 그리고 제대로 봉합되지 못한 채 벌어진 상처를 보면서 ‘거기다 소독을 해야 해, 반창고를 붙여야 해’ 비슷한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 둘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오로지 돈만 좇으며 살았다. 그 돈은 나와 동생들을 배불리 먹였고, 좁은 방구석에서나마 단잠을 자게 했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줬고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살게 해줬다. 그래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더 풍족한 집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그 둘을 마음껏 오해하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처음 하게 된 엄마, 아빠라는 역할 속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식들에게 쏟아 부은 만큼 엄마, 아빠에게는 비워져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당최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더듬어 살필 새도 없이 늙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결국 자유부인을 선언했다. 나는 그 선언 앞에서 어떤 만류도, 비난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30년 가까이 복무해온 엄마라는 자리에서 해방되어야만 했다. 엄마는 누구보다 우리들에게 엄마인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당장 엄마를 그만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이혼 역시 자연스럽게 찬성할 수 있었다. 이제 그만 서로를 놓아줘야 한다고. 나도 이별을 경험하며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만 해피엔딩이 아니라 ‘영원히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같은 엔딩도 해피엔딩인 거니까. 엄마, 아빠가 끝을 맞이 하며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 둘도 엄마의 폭탄 선언을 순순히 납득했다. 물론 불만이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이혼 역시도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맞다고. 참, 맞지 않는 둘이었는데 오래 참고 살아온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우리들은 언젠가 마치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직 중학교 3학년인 막내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다. 막내가 커가던 15년 동안은 엄마, 아빠가 사기를 당해 진 빚을 갚느라 함께 고생하는 서로를 애틋하게 여겼고 집에서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꽤 평화로웠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틀어지는 엄마, 아빠의 관계를 보며 막내는 큰 충격을 받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근 몇 년 동안 한번도 나에게 전화한 적 없었던 녀석이 엄마, 아빠가 다툰 날 집을 나와 엉엉 울며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곧장 엄마, 아빠에게 따졌다. 왜 걔까지 그런 아픔을 겪게 만드냐고. 왜 걔한테까지 그런 상처를 주냐고. 괴로운 기억을 나눠 가진 사람은 나와 동생들, 이렇게 셋뿐이었으면 했다. 막내로 태어난 그 녀석은 영영 몰랐으면 했다. 사실 평소 막내라는 이유로 온갖 어리광을 피우며 자기가 원하는 건 어떻게서든 가지고야 마는 막내가 귀여우면서도 얄미웠다. 나도 첫째로 태어나 다른 동생들에 비해 얻는 것이 많았는데도, 막내가 오로지 사랑만 받으며 부족함 없이 크는 게 부럽고 배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걔가 그런 감정까지 알길 바라진 않았다. 서로에게 겨눈 날 서린 말들 사이에서 덩달아 스치며 베이는 아픔 같은 것.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모든 일들을 고스란히 통과해야 한다는 두려움, 차라리 누군가 한 명이 집을 나가주기를, 새벽 늦도록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공방전에 어서 끝이 오기를 바라는 일 같은 건 절대 겪지 않기를 바랐다.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무거운 비밀이 더 이상 가슴 속에 쌓이지 않기를, 그 속에서 평범함을 갈망하며 살지 않기를 바랐다. 막내의 얼굴에는 나와 같은 그늘이 없었으면 했다.



그러나 결국 동생에게 나의 기억을 공유하며 졸혼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어야만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 아빠가 서로를 향해 품고 있는 애증란 감정에 더 이상 사랑이 남지 않게 된 것 같다며 우리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목이 메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말라붙어 가는 사랑 속에서 더 말라 죽어가는 건 자식들이었다. 동생은 그날 집을 나와서 24시간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혼자 국밥 한 그릇을 때렸고, 내 말을 진짜 수긍했는진 모르겠지만 한참을 말없이 듣더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엄마, 아빠가 집에서 또 다툼을 벌이자 막내가 경찰에 신고해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 나이 때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은 책 속으로 도망치는 거였는데, 역시 막내는 나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 그러면서 걔 마음은 또 아주 늙어버렸겠지. 나와 다른 동생들처럼. 그렇게 한번 늙어버린 마음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었다.



어제는 엄마가 전화가 와서 여동생에게 혼자 자취중인 집에 있으니 심심하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여동생은 대답했다.


“엄마, 우리도 외로웠어.”


엄마가 다른 사람들 만나러 가서 밤 열두시에 들어오고 그랬을 때, 우리도 다 외로웠어.



그 말에 발걸음도 멎고, 심장도 잠시 멎는 듯했다. 대학에 와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친구도 사귀지 않는 등 외로움이란 감정을 쥐뿔도 모를 것 같은,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애가 외로웠다고 말하니 그 외롭다는 말이 너무 시리고 춥게 느껴져서 나는 그 순간 잠시 얼어붙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엄마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런 엄마를 기다리면서 우리도 외로웠다고 말하는 여동생의 진심은 대부분 타지에서 생활하던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이기도 했다. 나보다 더 내색하지 않는 여동생은,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늙은 마음으로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제 나이로 살 수 없었던 놈이 집에 한 명 더 있는데 나보다 5살 어린 그 녀석은 엄마가 저지른 다단계. 판매와 코인 놀음의 최대 피해자이자 희생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가족들 때문에 날리기도 했다. 왜 나는 이런 집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할까. 그렇게 엉엉 울며 소리칠 수 있는 발언권을 단 한 명만 가져야 한다면, 나는 걔가 가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양보에 실패한다. 목소리 크고 감정적인 내가 번번이 먼저 선수를 쳐서 울고 불고 소리를 질러대서인지 늘 점잔만 빼고 있다(그렇게 해봤자 진만 빠지고 아무 것도 안 바뀐다는 사실을 나를 보며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부산에 사는 우리 집까지 더 좋은 에어컨을 사라고 돈도 빌려주면서, 매번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만 자처한다. 26살 밖에 안 됐으면서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구는 동생이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답답할 때가 있다. 그 나무 뿌리 밑에 주렁주렁 달린 우리를 털어내고 싶지 않냐고 묻고 싶다. 물에 둥둥 떠다니는 부레옥잠처럼 살아가는 나 때문에 쟤가 저러고 있나 싶기도 하고. 돈도 한 푼 안 보태주면서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부추기는 나의 말들이 동생은 와닿을 리 없었을 테지. 내가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후, 더더욱 가족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책임감에 묶인 채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체념한 것들이 늘어갔을 동생의 삶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졸부가 되고 싶다. 졸라졸라 부자. 진짜야.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너다, 동생아. 돈뭉치를 건네며 무엇도 책임지지 않고 걱정하지 말고 흥청망청 살 수 있는 시간에 쓰라고 말하고 싶다. 동생의 마음이 늙어버린 이유에는 나의 탓도 있기 때문에, 나보다 더 늙어버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동생들만 생각하면 조바심이 난다.



엄마, 아빠도 평생을 조바심 속에 살았을까. 아마 우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신들이 더 이상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노인이 되기 전에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과 집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일까. 하지만 나와 동생들이 원했던 건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돈을 더 쥐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얼굴을, 그리고 그 너머의 마음을 살펴주는 것을 바랐다. 서로를 더 오래 간직하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생기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엄마, 아빠에게 너무나 큰 사치였다. 한때는 우리를 사랑하기 이전에,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을 나누었을 서로에게도 끝내 잘 해주지 못한 것. 상대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쓸어주는 것. 그건 돈을 벌어서 가져다주는 것보다 더 깊은 정성과 인내심과 관심, 애씀이 필요한 일이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평생 모른 채로, 세월이란 더께만 쌓여가는 관계도 있다. 그 더미는 둘 사이에 놓인 채 멀어져가고, 손을 뻗어도 서로의 마음이 만져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도 준비해두지 못한 채 나와 전혀 다른 상대방을 알기 위해 나의 온 세계를 기울이는 의지를 발휘해야만 하므로. 사랑의 힘은 거기서 출발하고, 거기서 생명력을 얻는다. “엄마, 아빠가 서로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 이상 함께 살아도 외로운 건 똑같을 거야. 그럼 엄마는 또 밖에 나가서 집에 안 들어오겠지.” 결국 사랑의 수명이 다했을 때 계속 함께인 상태만 지속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엄마는 집에 홀로 있을 막내가 가엾고 미안해서 막내의 곁에 있어주기 위해 다시 아빠와 살아가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는 중이다. 막내를 생각하면 나도 금세 맹탕이같이 물러지면서, 그냥 다시 돌아와서 함께 살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음을 단단히 고쳐잡고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몇 달간의 우여곡절을 거쳐왔는데 오롯이 엄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눈 앞에서 허무하게 놓치게 둘 순 없다. 엄마가 반드시 위대한 성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본 엄마는 등 뒤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야 하는 사람. 방금 태어나 한 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 같은 사람. 엄마를 보면 심보선 시인의 ‘새’라는 시의 몇몇 구절이 떠오른다.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엄마가 날개를 접고 돌아왔을 때, 그런 엄마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항상 존재했기에 엄마가 마음껏 자유로울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이 항상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겨진 존재에게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고역일 수 있다. 마치 아빠가 힘겨워했던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때로는 내가 돌아왔을 때 텅 빈 둥지를 마주할 각오도 해야 한다.



나는 차라리 엄마가 남은 삶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더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나에게 아무도 없는 적막 속에서 덜 외롭게 존재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알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말이지만 몰랐던 자신에 대해서 발견하고, 스스로와 가깝게 지내면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언제나 사람들과 연결된 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 자신과는 평생 연결된 채 살아가야 한다. 이따금 자주 나와 맞잡은 손조차 놓고 싶어질 때도 생기지만, 점차 서툴고 모자란 나를 인정하며 스스로와 걸음이 맞춰지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무언가 잃어버린 채, 잊고 있는 채로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났다. “엄마 자신과 친구가 되어보는 건 어때?” 하지만 엄마는 또 모르겠다는 대답만 늘어놓는다. 올해로 벌써 56살이 된 명숙씨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나 늙게 만들고,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듯, 해탈하고 체념해버린 사람처럼 살아가게 만들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람 마음도 모르고, 가까운 가족의 마음도 나몰라라 하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래도 내가 계속 알려줘야지, 어쩌겠어. 나는 소중한 엄마의 자식이니까. 엄마가 날개를 펴고 떠난 자리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전혀 늙지 않은 심장을 가진 엄마를 계속 알고 싶기 때문에. 이 사랑에 다함이 없을 예정이므로, 엄마가 들고 있는 새하얀 도화지 앞에 나란해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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