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Apr 05. 2023

개화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갈 때면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는 중에 종종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본다.

2022년 8월 강남 서초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수해로 유실된 제방은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온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들쑤셔진 흙바닥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혔다가 지워졌다.

3월 말부터 4월 초 벚꽃 개화 시기가 되면 양재천 근방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올해도 얇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양재천을 찾았다. 아이들은 부모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뛰어다녔고 연인들은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채 사진을 찍었다. 출근길에 꽃을 구경하던 나는 수업에 늦을세라 지하철역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지난 수업에서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찬반 토론을 진행했다.

반대 측 학생이 수업 자료를 토대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일부 희귀 식물이 멸종된다.’는 근거를 들어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피력하자 상대로 나온 찬성 측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토론 후 피드백을 주는 과정에서 나는 상술한 지점에서 찬성 측 학생이 취했어야 할 태도를 일러주었다. 요는 상대의 근거가 타당할 때에는 이를 그대로 인정한 뒤 한 걸음 더 나아간 생각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례를 들었.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희귀 식물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특정 식물 종의 멸종을 감수하고서라도 도보 관광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약자가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발이 거셌다. 한 아이가 적의 없는 투로 “너무 사이코패스 같아요.”라고 말하자 나는 내가 그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직감했다. 아이들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나는 시범 보인 반박이 나의 본심이 아니며 내게 주어진 역할 안에서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수많은 논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찬반 토론의 가치는 사견과 다른 생각을 가정해서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고 보다 나은 타협점을 찾는 데에 있다. 이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하기 위해 나는 남은 수업 시간을 전부 썼다.

양재천 제방을 무너뜨린 2022년 8월 폭우는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여성 세 명을 사망하게 했다. 47세 여성과 그의 13세 딸 그리고 발달장애를 가진 48세 언니. 나는 그 소식을 작년 8월 식당 티브이에 틀어진 뉴스로 접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벚꽃이 지자 산책로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은 발길을 끊었다. 여전히 물은 흐르고 새들은 강을 찾는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 졸업식날 초등학생에게 가르친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