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패딩 이야기
3월이 되면서 부쩍 비도 많이 오고 흐린 날이 이어진다. 봄이 오려고 그러는지 날씨가 궂다. 낮엔 따뜻하다 싶다가도 해가 지면 춥고, 어떤 날은 한겨울 같은 추위가 오기도 한다. 이럴 때 가장 고민이 되는 건 옷이다. 겨울옷은 부담스럽고, 봄옷은 더 부담스럽다. 이맘때가 되면 한 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3월이라는 숫자와 절기는 봄을 가리키고 있지만 체감상 봄은 아직 먼 것 같다.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너무 차서 귀가 새빨개졌다. 이런 상황을 매년 겪지만 매년 날씨와 눈치 싸움을 하고 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그랬다.
입학을 하고 얼마 안 된 새내기 시절, 처음으로 집을 떠나 하숙집 생활을 했다. 부모님은 필요한 생필품부터 옷가지들을 챙겨 보내주셨다. 그런데 옷들은 모두 새 학기에 잘 어울리는 얇고 산뜻한 봄옷들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날씨가 비슷해서 꽤나 추웠는데 곧 따뜻해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큰 추위가 찾아왔다. 눈이 날릴 정도로 아주 추운 날씨였다. 집에 있었다면 당장 패딩을 꺼내서 입었을 텐데 입을만한 두꺼운 옷이 없었다.
어쩌나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먼저 알아보시고 걱정을 해주셨다. 그리고 딸이 입는 옷이라고 노란색 패딩 하나를 건네주셨다. 아주 샛노란색이었다. 노란색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런저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얼른 그 패딩을 입고 학교를 갔다. 날은 추웠지만 근래 들어 가장 따뜻하게 하루를 보냈다.
며칠 추위가 계속 되자, 하숙집 아주머니는 더 입고 돌려 달라고 먼저 얘기해 주셨다. 엄마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는데 봄옷만 보냈다고 걱정이 많으셨는데, 패딩을 빌려주신 이야기를 듣고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안심하셨다. 이렇게 꽃샘추위가 기승인 날이 되면 꼭 그날이 생각난다. 하숙집에 있는 내내 밥이 맛있고 방도 따뜻해서 잘 지냈는데 지금도 그곳에 계시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너무 오래됐기도 하고 연락처가 없어 감사인사를 드릴 순 없어 아쉽다. 대신 받았던 도움을 잊지 말고 나눌 수 있을 때가 오면 꼭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세탁소에서 문자가 온다. 패딩, 코트 세탁 시 20% 할인을 해준단다. 나중에 옷이 몰리니 빨리 옷을 맡기라는 거다. 아직 패딩을 넣을 수 없다. 이번에는 눈치싸움에서 이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