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내 쓴맛이 조금 사라지고 단맛이 도는 튼실한 무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공행진을 달리던 무값도 조금 내렸다. 엄마는 커다란 무 하나를 사서 뚝딱하고 깍두기를 담그셨다. 김장김치가 물리는 지금, 아삭한 깍두기는 별미다.
나는 깍두기를 참 좋아한다. 큰 총각무로 담근 무김치보다 잘게 썬 깍두기가 좋다. 먹기도 좋고 질기지 않아서다. 맛이 들면 단맛도 더 난다. 이렇게 깍두기를 좋아하는데 엄마표 깍두기가 생겼으니 뭘로 먹을지 고민이 시작됐다.
어릴 때 놀이를 할 때 짝이 안 맞으면 남은 사람을 깍두기라고 불렀다. 왜 그런 말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작은 깍두기는 어디든 끼일 수 있는 느낌이 있어서였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놀이를 할 때 깍두기는 꼽사리 끼워주는 정도의 위치다. 하지만 내게 깍두기는 메인이다. 깍두기를 먹기 위해, 깍두기에 어울리는 요리를 한다.
깍두기를 위한 요리로 예전에는 라면을 즐겨 먹었다. 면을 떠서 깍두기 국물을 부어 섞어 먹으면 꿀맛이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귀찮더라도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이번에는 어묵국수를 끓였다. 어묵국수는 어묵으로만 국물을 내서 먹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국수다. 국수는 국물 내기 번거로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만들면 좋은 국수다. 맹물을 끓이다가 어묵을 넣고 국물을 낸 후, 시원한 맛을 위해 파, 색내기용 당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주면 된다. 간은 액젓과 소금으로 한다. 국수를 삶아 국물을 얹으면 완성이다. 어묵국수의 포인트는 어묵을 듬뿍 넣어주는 것이다. 국물을 따로 내지 않는 만큼 어묵으로 국물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넣어주는 것이 좋다.
어묵을 면과 비슷한 두께로 썰어 한 젓가락에 같이 떠서 먹으면 맛이 좋다. :)
국수가 완성되자마자 깍두기를 후다닥 꺼냈다. 꺼내면서 한 입 맛을 보니 담은 지 며칠 지나서인지 제법 맛이 들었다. 얼른 국수 한 젓가락 들어 입안 가득 넣은 후, 깍두기도 집어 먹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역시 깍두기엔 국물 있는 면요리가 최고인 듯싶다. 또 어떤 요리로 깍두기를 먹을지 고민이다. 맛있게 익어가는 깍두기가 있으니 행복한 고민에 요리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