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o 시오 Sep 25. 2015

Comfort Food

영혼을 채우는 내 어린날의 음식



엄마는 바쁜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며 우리를 깨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이십여 년을 살았다. 너무 바쁠때는 삼겹살을 꺼내주며 구워먹으라고 했는데 동생과 나는 그게 좋기도 했다.

중학교 때 부터는 내 교복과 아빠 와이셔츠는 내가 다렸다. 귀찮았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상에 올라오는 엄마의 된장찌개는 항상 밍밍한 모습이었고 나는 세상 된장찌개는 다 그런 맛인 줄 알았다.

동네 돼지갈빗집에서 고추장 섞은 칼칼한 된장찌개를 맛보기 전까진. 김치찌개도 싫어했다. 알고 보니 엄마의 김치찌개는 김칫국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엄마를 닮아 카레의 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자취 초년생 나의 모습


엄마의 집에서 나와 산지 8년이 되었다.

자취를 하면서 종종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가 해준 따듯한 찌개가 먹고 싶던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처음 몇 년은 엄마가 요리를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요리를 직접 해 먹으며 살아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발견했다. 나의 엄마는 바쁜 사람이었다. 분주한 아침 10분이면 없어질 한 그릇을 위해 이른 새벽 눈 뜰 기력이 없는. 국을 끓일 육수를 만들고, 맛이 베어나오길 기다리며 보글보글 끓일만한 여유가 엄마에게는 없었던 거다.  




미국에 오고 나서 하루는 베이킹을 좋아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주셨던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그 친구는 문득 나에게 물었다.

"너의 추억을 자극하는 Comfort food는 뭐야?"

만 18년을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한국음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우습게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작한 시럽에 졸인 사과 디저트, 얇게 부쳐 꿀을 뿌린 크레이프, 초콜렛 칩과 건포도가 들어간 쿠키였다. 친구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했다. 그러게. 나도 당황했다.


크레이프는 내 시그니쳐 디저트가 되었다. 엄마 고마워요


내가 감기에 걸려서 목이 칼칼해 할때 엄마는 사과를 깎아 설탕물에 졸여가며 말해주었다. 엄마도 어렸을 때 엄마의 엄마가 이걸 해 주셨어, 너의 외할머니는 부산이 친정이라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국 음식과 문화를 자주 접하셨다. 나는 엄마의 추억 덕분에 맛없는 감기약이 아니고 설탕물에 뭉근해진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크레이프는 좀더 간식거리였다. 그 당시에는 핫케익 믹스가 대 유행이었는데 엄마는 그걸 안사고 꼭 밀가루를 우유와 달걀에 풀어 얇게 부쳐줬다. 이게 크레페라는 거야. 그리곤 올리고당이나 꿀, 메이플 시럽을 뿌려줬다. 아직도 나는 누텔라와 바나나 조합보다 꿀을 뿌려먹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자취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크레이프(미국 친구들은 크레페를 크레이프라고 했다. 원래는 불어로 Crêpe.)를 부쳐낸 결과 엄마보다 맛있는 크레이프를 부쳐낼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아직 엄마한테 해 드리지 는 못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


그리고 단언컨데, 살면서 이것만큼 맛있는 쿠키를 먹어본 적이 없다! 엄청 볕 좋은 토요일에 엄마와 오랜만에 집에 있었다. 티비에서는 영화 쇼생크 탈출이 흘러나오고 고소한 반죽 냄새가 부엌에서 퍼져나왔다. 엄마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반죽을 손바닥 크기로 팬에 펼쳤고, 나는 거기에 초콜렛 칩과 건포도 조각을 알알이 박았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쿠키 만들기에 집중을 하지 않고 화면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눈 앞에 쿠키가 완성되어져 나왔다. 녹녹한 쿠키안에 녹아있는 초콜렛과 새콤하게 몰캉대는 건포도. 우유 한 잔을 마셨다. 행복이었다.

스물다섯 지금의 나는 여전히 빵과 쿠키는 우유없이 먹지 않고, 내 마음속 쿠키다운 쿠키는 아직도 엄마가 해준 그 것 하나 뿐이다.




어릴적 내 나이보다 그 때 엄마의 나이가 가까워지는 이십대 중반이 되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낼수록  그때의 엄마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어렸고, 바빴고, 딸이 있었다. 아들도 하나 있었고 엄마처럼 바쁜 남편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나라는 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었을까. 나는 엄마가 궁금하다. 옛날의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출처> 어쿠스틱 라이프,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강의 향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