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데 왜 이럴까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은 너무나 낯설 때가 있다.
남 앞에 서는걸 좋아하지 않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줄곧 발표를 맡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거나,
파랑 초록 계열의 옷만 넘쳐나던 내 옷장이 어느 순간 색색깔의 옷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는 이 낯선 모습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른다.
만두는 이십여 년간 내게 맛없는 음식이었다.
엄마랑 동생은 출출할 때 잘만 꺼내 구워먹던데. 구워먹고 쪄먹는 고 바삭하고 말랑 촉촉한 녀석들은 나에게는 냉동고기 비린내가 나는 싸구려 음식일 뿐이었다. 만둣국이나 라면은 또 어떻고. 국물이 가짜 고기(나의 기준에는) 냄새로 가득 차는 게 너무 싫었다!
그나마 좋게 기억되는 몇몇 중 하나는 열세 살 때 북경에 가서 먹었던 만터우. 꽃빵보다 모양이 차분하게 잡히고 아담한 게 누구는 뽀얗고 누구는 튀겨져 노릇하다. 안에 소가 들어있지 않아 순수한데다 연유에 찍어먹으면 달콤하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삼 년 전쯤 영국에서 들어간 딤섬집. 어딘가 몰려있던 수많은 딤섬집에서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맛이 특별히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강의 향이 고기 잡내를 잡아주던 샤오룽바오, 투명하고 탱글한 새우만두가 집에서 먹는 냉동만두가 만두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었군요!
그 후로도 만두를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았다.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니까 딤섬집 만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한두 번 나를 위로해준 좋은 만두의 기억들 때문에 배고플 때는 룸메이트의 냉동만두를 훔쳐먹을 정도는 되었다. 누군가가 만두를 해줄 때는 속으로 돼지고기+두부의 비릿한 조합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기도 하며.
그런데 문득, 정말로 난데없이 만두가 먹고 싶어졌다. 내가? 만두를? 어떻게 된 일인가 생각해보니 이유로 짐작되는 몇몇 요인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이연복 셰프가 선보인 갈쌈만두 (익반죽 한 만두피에 갈치 살, 버섯, 그린빈을 넣고 쪄서 만든 만두)가 내게 준 컬처쇼크. 닭고기도 소고기도 아닌 생선살이라니! 담백하고 부담스럽지 않다는 그 맛을 나는 흘려 듣지 않았던 거다. 식탐 많은 녀석.
두 번째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 졸업이 다가오고 과제와 시험은 매주 넘쳐나는 요즘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공정이 귀찮은 요리를 하곤 하는데, 그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발효빵을 만든다거나 손질을 까다롭게 하는 음식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이다. 만두피를 치대고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작업은 여간 번거로워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평소엔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는 오늘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평일 밤 아홉 시에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익반죽을 하고, 갈치 대신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조기를 몇 마리 꺼내 구워 뼈를 바른다. 뼈 바르는 건 솔직히 너무 귀찮아서 아랫집에 사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그동안 나는 채소를 썰고, 만두피를 밀고. 곧 생선살을 소에 넣고 다진 생강과 미림으로 무쳐준다. 야밤에 미쳤구나 미쳤어. 헛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누가 봐도 서툰 솜씨로 만두를 빚었다. 친구가 내 딸은 못생길 것 같다며 내 만두를 조롱했지만.. 그래도 뭐 어때 맛만 있다면! 촉촉하게 쪄진 조기 만두는 담백하고, 식상하지 않은 맛이었다. 좀 두툼한 만두피가 조금 아쉬워도 괜찮아 처음이니깐. 만두 세 개 집어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를 만두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