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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Nov 17. 2015

Tell me what cheese you like

빨간 치즈의 추억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친하게 지내는 그 나이 때 전형적인 동네 친구사이였는데, 그 아이를 구박하면서도 잘 챙겨주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올  때마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면서 '너네 집에는 신기한 음식이 많다'는 그 애에게 동생이 먹을 골드키위 몇 개 집어다가  그다음날 주기도 했다.


사실 그 애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우리 집 냉장고를 한 번씩 열어보고 돌아갔다. 새로운 먹거리를 사는 걸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집에는 흔하지 않던 음식들이 꽤 있었다. 유럽식 커피 케익이라던가 결 대로 찢어지는 햄, 라비올리 같은 건 2000년 대 초반 우리 동네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그런 것들을 조리해서 친구들에게 주면 아이들은 감격에 젖어했다. 내가 잠깐 우쭐할 수 있었던 건 물론이고.


그러나 아무도 쉽게 건들지 못했던 식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치즈다. 요즘이야 파마산 치즈를 파스타에 갈아 넣고, 와인과 함께 브리 치즈를 곁들이지만 그 당시 대중적인 치즈는 '피자치즈', '네모나고 노란 치즈' 정도로 분류될 수 있었다. 우리 집 치즈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빨간 고무에 예쁘게 싸여 있는 동그란 녀석들. 포장을 뜯으면 풍기는 쿰쿰한 냄새에 아무도 맛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드넓은 치즈의 세계로 인도해준 엄마에게 감사하지만,  그때는 집에 있는 치즈가 고 녀석들 뿐이니 선택권이 없었다. 당최 왜 빨간 고무로 둘러싼 건지, 그것도 먹을 수 있는 부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딱딱하지도, 물컹대지도 않고.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에 콤콤한 냄새가 나는 유럽에서 온 치즈. 한 녀석은 '에담 Edam', 다른 녀석은 '고다 Gouda' 치즈라고 했다. 그렇게 운명을 만났다.

<좌 고다 우 에담. 둘 다 네덜란드가 원산지이며 각각 전지유와 부분 탈지유로 만들어진 것이 차이점이다.>  


엄마는 내게 정공법으로 치즈를 가르쳐 줬다. 새끼손톱만 한 치즈 조각과 와인 한 모금을 맛보게 해주었는데 그 콤콤한 냄새와 적당히 단단한 질감이 와인을 만나니 오묘한 맛이 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한번 두번 먹다보니 그 맛에 빠져버렸다. 좀 크면서 부모님은 내게 드라이 와인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그게 마침 이 치즈들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그 때 엄마 아빠는 내가 치즈와 와인을 이 정도로 좋아하게 될 줄 알았을까...   


그 외에도 큐브치즈, 스모크치즈, 브리치즈, 에멘탈 치즈, 염소 치즈 등등 여러 종류의 치즈를 받아&찾아 먹었다. 그래도 첫사랑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고담&에담 듀오가 최고 중 최고. 낯선 곳에 가도 식료품 점에서 이 두 녀석을 만나면 자동으로 엄마와 와인생각이 난다. 내 치즈 인생에 아쉬운 점은 부드러운 연질 치즈(브리나 카망베르 같은)의 매력을 아직 느끼지 못한 것. 20대가 가기전에 맛있는 녀석 하나 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인생 치즈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왜 그 치즈가 제일 좋은지도.

나의 치즈가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치즈가 나를 만나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맛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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