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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Nov 22. 2015

질문으로 다가서기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하루가 끝났다. 나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녔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다녀왔을 듯 하다. 나는 오늘 일찍 집을 나와 학교를 걷다가 수업을 듣고, 중간중간 아는 사람들과 마주쳐 몇 마디 나누고, 잠깐 실의에 빠져있다가, 성경공부에 가서 멤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시험에 지쳐있는 한 언니와 함께 후다닥 저녁도 해먹었다. 지금은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 생각 중이다. 물어보게 된다. 오늘 상대에게 진심으로 질문한 적이 있었는지.




나는 질문이 좋다. 내가 한 말을 꼭꼭 되새김질해 거기서 질문을 끌어내는 사람이 좋다. 반대로 내가 한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성실히 대답해주는 사람도 좋다. 모범 질문(답안) 대신 본인의 냄새가 묻은 무언가를 던지는 것. 성심껏 상대를 위해 그 뻘쭘한 일을 하는 것. 질문을 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호기심, 존중, 약간의 도발, 자기다움, 애정 등의 간질간질한 기운들이 좋다.




그런데 질문하는 건 어렵다. 음, 엄밀히 말해 진심으로 질문하는 게 어렵다. 대화를 잇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띄우는 물음표들, 이를테면 '밥 먹었어?' '방학 땐 뭐 할 거야?' '잘 돼가는 사람  있어?'는 굳이 생각을 거쳐서 나오는 질문은 아니다(지인-짜 궁금한 경우도 있지만). 그냥 하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흘려 듣기 십상이라 다음번에 만나면 아마 또 물어보게 될 거다.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매번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어' 정도의 느낌을 주는 게 포인트니까.




매번 진심이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데,  그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본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대화를 했다간 그 날 해야 할 일을 다 할 기력과 시간이 없어진다. 아니면 내가 그 사람에게 그렇게 궁금한 게 없다. 관심이 없는 거지. 아니면 상대가 바빠 보이거나. 근데 혹시나 이런 이유도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질문은 호기심의 전달이다.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비로소 질문이 생겨난다. 그 사람이 알고 싶다는 것. 내게는 그런 마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라고 느껴진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열정과 기쁨이 그로 인해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궁금함은 많은 관계의 시작이 되거나 재정립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작은 불씨에서 많은 것이 싹튼다. 질문과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그것이 대화가 되고, 그 대화가 쌓여 서로를 나눈 시간이 되면 관계는 깊어진다.   




그러나 마음은 점점 둔해진다. 피곤해서, 마음이 나로 가득 차서, 남을 보지 않고 나만 생각한다. 질문하는 방법도 잊어버린다. 관계는 표면적인 것들로 쌓여간다. 그러지 않고 싶다. 먼저 상대를 보고, 그를 궁금해 하자.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몰라서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을 바라보자. 상대를 곱씹자. 내가 스스로에게 관심 가지는 것 만큼만 가져보자. 저 사람은 어떨까, 생각해보자.




당신을 잘 쳐다보고 싶다. 궁금해하고 싶다. 질문을 잘 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보는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다. 설령 당신이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대를 먼저 주목하고 싶다. 너무나 아름답게, 고유하게 지어진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당신이 모르는 당신을 함께 알아가고 싶다. 내가 모르는 나를 당신이 함께 발견해 주면 좋겠다.



 질문으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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