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온 Dec 24. 2020

스페인의 역사 16

호세 1세와 스페인 독립전쟁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1808년 7월 6일 스페인의 왕 호세 1세


즉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념을 스페인에


뿌리 내리고 스페인을 근대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의회에 압력을 넣어 헌법을 제정하게


하였는데, 바욘 헌법이라고 합니다.



이 헌법은 나폴레옹 법전과 닮은 근대적


헌법입니다. 즉 구체제인 신분제와 절대왕정을


벗어던지고 개인의 자유, 평등을 기본 정신으로


명시한 법전이었지요.



호세 1세 출처 위키피디아


호세 1세는 봉건제도의 폐지, 교회 토지 매각,


장자 상속 제도 폐지등의 근대적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친프랑스 성향의 지식인들과


스페인 왕실에 실망한 사람들은 호세 1세의 개혁을


지지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원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대다수의 스페인 국민들은 이러한


개혁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신들의 왕을


폐위시킨 프랑스 세력이라는 사실에


분노하였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호세 1세의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총살하였으므로 스페인


국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들게 되었고 스페인 독립전쟁


시작되었습니다. 귀족, 성직자, 군인들로


구성된 평의회는 영국에 도움을 청하고


페르난도 7세를 스페인의 유일한 왕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스페인의 저항이 거세어지자 1808년


나폴레옹은 25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와


마드리드를 점령하고 스페인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고


게릴라전으로 프랑스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게릴라는 대부분 노동자,


수공업자, 학생, 등등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무기는 보잘것 없었지만


프랑스 군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격을


하고, 프랑스군의 시설을 파괴하고,


배후에서 공격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게릴라들을 잡아서 처형했지만


스페인 민중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812년 7월 22일 스페인 군은


게릴라들의 활동과 영국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의 지원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웰링턴 장군 출처 위키피디아


호세 1세는 도망을 갔고, 웰링턴 장군은


마드리드를 수복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 중이었고


패색이 짙어 가던 중이라 스페인에 추가로


파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프랑스군은 모두 철수하고 페르난도 7세가


다시 왕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에 들어온 웰링턴 장군은 스페인의 산업 시설을


파괴하고 철수하였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면방직


공업은 영국과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스페인 독립전쟁기간 동안 스페인의


산업기반은 완전히 망가졌으며, 인구감소에다가


흉년까지 겹쳐 1815년에는 국가 채무가 1년


세입의 20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의 역사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