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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23. 2020

스페인의 역사 15


페르난도 7세는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로 1808년 민중 봉기에 의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의해 곧 폐위되었다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1813년 다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부모를 미워하였는데, 바람둥이인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의 애인인 고도이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였고, 아버지인


카를로스 4세는 그러한 고도이를 믿고


모든 일을 위임하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삐뚤어져서


강한자에게 아첨하고, 그가 약해지면 곧


배신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페르난도 7세 출처 위키피디아



페르난도 7세가 왕이 되었을 때는 이미


프랑스 나폴레옹의 10만 대군이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페르난도 7세는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는데, 왕위에서 물러난 아버지


카를로스 4세도 나폴레옹에게 다시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입장에선 이렇게도 나약하고


부패한 스페인 왕실이 당연히 만만하게


생각되었겠지요.



페르난도 7세는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바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갔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려고 찾아간 것이지만,


그 자리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가문 출신을


스페인 왕으로 세우겠다고 통보했습니다.


페르난도 7세는 굴욕감을 맛보았지만


저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곧 나폴레옹의 군대는 마드리드로 진군하여


카를로스 4세의 딸과 아들을 데리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성난 스페인 사람들은


마드리드 궁전 앞에 모여 프랑스 군대를


막아섰습니다.  프랑스군은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습니다. 스페인 군중은


저항할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날은 1808년 5월 2일 이었고,


다음날인 5월 3일,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고야는 이틀 간의


참혹한 사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2일 출처 위키피디아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



이 소식은 스페인 곳곳에 전해져서 전국적으로


봉기가 이어져 나폴레옹 군대의 전진을 막았습니다.



이렇게 스페인 국민은 왕실과 국가를 위해


비참하게 죽어 갔지만 카를로스 4세와


페르난도 7세는 나폴레옹과 비굴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스페인 왕위에서 물러나는 대신


풍족한 삶을 보장받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카를로스 4세는 200명의 하인을 두고


프랑스로부터 풍족한 연금을 받으며 화려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페르난도 7세 또한 나폴레옹이 주는 연금으로


춤, 음악, 승마, 낚시를 즐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국민에게 프랑스에 항복하고


나폴레옹의 형을 왕으로 받아들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하면서 나폴레옹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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