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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an 27. 2021

영화 여왕 마고

역사적 배경


16세기 유럽에서는 로마카톨릭에 저항하는


신교도들이 급증했고, 개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카톨릭 교도들의 대응이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이 영화가 다룬 내용은


1572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참혹한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이다.



당시 프랑스는 발루아 왕조 앙리 2세의 둘째 아들


샤를 9세가 재위하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실권은


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가 갖고 있었다.





그녀는 심약한 샤를 9세를 대신하여 셋째 아들인


앙주를 왕위에 올리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고,


딸인 마르그리트 (마고)의 결혼을 이용하여 신교도를


제거 할 계획을 세운다.



실제 마르그리트의 초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마고의 신랑감은 나바르 왕국의 앙리로서


이 결혼은 프랑스 왕실이 신교도와의 화해를


도모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었다.




성대한 결혼식이 끝난 후, 8월 24일 새벽,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것을 신호로 카톨릭 교도들이


신교도인 위그노를 대거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위그노의 지도자인 콜리니를 암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랑을 따라 나바라에서 온 많은 하객들,


위그노의 집과 상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신랑 앙리는 거의 포로나 다름없이 궁궐에 갇히어


두려움에 떨었고, 파리는 대학살이 자행되어


단 6일 만에 3천여 명이 죽었다. 학살은 3개월 간


이어져 프랑스 전역에서 3만여 명의 위그노가


학살되었다.




앙리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 약속하고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마고의 도움으로


나바르 왕국으로 돌아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를 9세는 후계자 없이


사망하였다. 그러자 폴란드 왕으로 가있던


동생 앙주가 앙리 3세로 즉위하지만 그 또한


후계자 없이 피살당한다.


이제 가장 가까운 왕위계승권자인 나바르의


앙리가 앙리 4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의 즉위로 발루아 왕조는 끝나고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앙리 4세는


화해의 표시로 자신이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 칙령을 내렸다.


이로써 프랑스에서의 종교전쟁은 막을 내린다.



앙리 4세와 마고는 한번도 부부로 산 적이 없었다.


각자 많은 정부를 두고 살았고, 물론 아이도 없었다.


마고는 정치에 관여했다가 오빠인 앙리 3세로 부터


암살의 위협을 받았고, 남편인 앙리 4세의 즉위


후에는 남편이 죽일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앙리 4세는 둘의 결혼을 무효로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7년 만에 왕비의 칭호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결혼 무효를 수락했다.



이후 앙리 4세는 마리 드 메디치와 재혼하였다.


마고는 그 두사람이 낳은 아이들을 돌보고 비망록을


집필하였다. 그녀의 비망록은 샤를 9세, 앙리 3세,


앙리 4세 시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이 영화는 1994년에 개봉되었는데,


미국 헐리우드가 독점하는 영화계의 편중


현상을 타파하고자, 프랑스가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야심작이었다. 따라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이며, 그 당시 궁정 의상과


어둡고 열악한 환경의 성채, 문란한 성 풍속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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