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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an 29. 2021

부여 여행 1

부소산성


이번 겨울에 꼭 이루고픈 소원 하나는


장작 때는 뜨끈뜨끈한 구들장이 있는


방에서 하룻밤 자 보는 것이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남편과 함께


1박 2일의 부여 여행을 떠났다. 마치 여행에


들뜬 아이처럼 여행 전날 잠을 거의 못잤는데도


새벽 일찍 일어났다.


전날 밤 준비해둔 재료로 김밥을 싸면서


아침을 해결하고, 된장국과 김밥, 커피를 챙겨서


아직도 해가 뜨지 않은 캄캄한 7시에 부여를


향해 출발했다.



대부분의 부부는 성격이나 취향이 잘 안맞는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 또한 성격과 취향이 극과 극이다.


그래도 잘 맞는 점 중의 하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보다는 차 안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도시락과 된장국을 보온병에 싸가서 먹는 일을


참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남들은 유별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난 여행을 갈 때, 늘 내가 볶은 커피와 간단한


도구들을 가지고 간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내려 마실때 차안에 가득 퍼지는 커피향은


언제나 나를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다.


6세기 성왕 때, 웅진성(공주)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하여 660년 멸망할 때까지 120년 동안


도읍지였다. 부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부소산성이었기에 첫 행선지로 정했다.





우리는 제 1코스로 걷기로 하고 삼충사로 향했다.


삼충사는 멸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백제의 마지막 세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전체 부소산성 중에서 가장


양지바르고 따뜻한 장소였다. 건물에서 용마루의


양쪽 끝을 장식한 치미기와가 눈에 띄었다.


치미기와는 건물의 품격과 완성도를 높이는데


이 치미기와는 빛깔이, 다른 기와와의 부조화를


느끼게 한다. 설명을 찾아보니 역시 이것은


부소산의 절터에서 출토된 것을 복제하여 장식한


것이라 한다. 진품은 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날은 월요일 휴관일이라 보지 못했다.


삼충사



다음 도착한 영일루는 왕이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던 곳이라 한다.


영일루


군창지


백제시대 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군사목적의 대형 창고로 쓰였던 군창지를 


지나 반월루에 이르렀다. 누각에 올라보니 


백마강과 부여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백마강



이번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나를 흥분시킨 일은


백제문화유적 발굴현장을 보았다는 것이다.




반월루 근처에서 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보았다.


백제인들은 토성을 쌓을 때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계단식으로 흙을 층층이 다져서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으로 토성을 쌓았다. 이를 판축법이라하는데


백제의 첫 번째 수도인 한성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판축법으로 축조되었다. 그와 유사한 모습이 일부


모습을 드러낸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계단식으로 다져놓은 흙사이로 굵은 나무뿌리가


뻗어 갔던 흔적이 보인다.




발굴현장



다음에 이르른 곳은 수혈 건물터였다. 이곳은


관광안내지에 소개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겐


무척 흥미로운 장소였다. 수혈이란 아래로


곧게 파내려간 구멍이나 구덩이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움집인 것이다.



수혈 건물터


기둥을 박았던 흔적과 둘레에 나무 벽을 친 것,


화덕을 놓았던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나 토기등의


유물도 전시되어 있어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상을 압축하여 보여준 느낌이다.



부소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자루를


지나 낙화암으로 향했다.



사자루 아래 에서 본 백마강


낙화암은 40미터 높이의 절벽인데 나라의 멸망을


슬퍼한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담고 장소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전설 속의 삼천이라는 숫자에 대해


어렸을 땐 그대로 믿었다. 이제 그것은 과장이며


오직 슬픔의 크기를 묘사한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낙화암 정상 바위에 세워진


백화정은 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어졌다 한다.


낙화암 정상의 백화정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향해 내려가는 길


절벽에 세워진 아주 작은 절이다. 백제시대에는


정자였고 고려시대에 절이 건립된 듯 하다고 전한다.


이 곳에는 바위틈에 고란초라는 식물이


자라고 약수가 솟아나오기 때문에 고란사


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란사


고란사 선착장



평소에는 고란사 아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우리가 간 날은 운행을 하지 않아


산성의 서쪽으로 내려와 부소산성 탐방을 마쳤다.



이제 내가 가본 산성은 북한산성, 남한산성,


부소산성, 공산성이다. 그중에서 부소산성은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산성이었다. 사이사이에


구불구불한 길들이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고


하늘 높이 솟은 수많은 소나무들이 산성을


기품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가을에 꼭 다시


한번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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