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온 Jul 21. 2020

영국의 역사 2

헨리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


영국의 사극에서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헨리 8세는 6명의 왕비를 맞이 했으며,

수장령을 통해 영국국교회를 반포하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던 왕입니다.


헨리 8세 출처 픽사베이


헨리 8세의 아버지헨리 7세는 장미전쟁을

승리로 마감하고 튜더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장미전쟁은 30년간 이어진 귀족들 간의

왕위 다툼이었습니다. 전쟁을 마무리한

헨리 7세는 강력한 왕권의 기반을 다져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스페인과

결혼동맹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헨리 7세에게는 큰아들 아서와 작은아들 헨리가

있었는데, 큰아들 아서가 두 살 때,아라곤왕국의

캐서린과 약혼을 시킵니다. 캐서린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 이었어요.

약혼 당시 3살이었죠. (스페인의 역사 편에서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이 합쳐져서

스페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아라곤의 캐서린 출처 위키피디아


아라곤의 캐서린은 16살에 영국으로 와서

아서와 결혼을 했는데, 신랑 아서가 5개월만에

죽었습니다. 이제 10살 난 작은 아들 헨리가

왕세자가 되었습니다.


아서와 캐서린의 결혼은 두 국가 사이의 군사

동맹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양국은 동맹을

지속하기로 했지요. 그리하여 헨리는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캐서린은 3남3녀를 낳았지만 일찍 죽거나 사산을

하여 딸 메리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

더이상 임신할 가능성이 없게 되었죠.


왕위를 노리는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헨리 8세는

꼭 후계자를 낳고 싶었습니다. 그즈음 왕비의

시녀였던 앤 볼린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헨리8세는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를 선언합니다. 형수와 결혼한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고, 성경에도 명백히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왕실의 결혼이 무효가 되려면 교황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스페인의 왕 카를 5세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절대 허가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카를5세의 이모이기도 했거든요.


캐서린도 항변했습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20년 넘게 함께 살며 아이까지 낳았는데

결혼이 무효라니 말이 안된다고요.


하지만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헨리8세는

1533년 앤볼린과의 결혼식을 거행하고

1534년 수장령을 선언합니다.

잉글랜드에서 종교의 최고 존재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즉 영국왕은 교황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과

분리된 영국국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캐서린은 폐비가 되어 내쫓겼습니다. 그녀의

딸 메리는 공주의 신분을 박탈 당하여 사생아가

되었으며 왕위계승 서열에서도 제외됩니다.


나중에 복권이 되어 메리 1세가 되지만요.


메리 1세   출처 위키피디아


캐서린은 끝까지 왕비임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왕이 다시 자신을 불러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으나 153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실의 여인들은 겉은 화려하나, 정략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잉글랜드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