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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ul 22. 2020

영국의 역사 3

헨리 8세와 앤 볼린


앤 볼린은 헨리8세의 두번째 왕비이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 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이었고,

어머니는 명문집안의 딸이었습니다.

앤볼린이 궁정생활을 시작한 것은

헨리8세의 누이인 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면서 부터입니다.

메리 튜더는 프랑스 왕 루이 12세와

결혼을 했는데 그때 프랑스로 가서

고급스러운 궁정문화를 익혔습니다.

잉글랜드로 돌아왔을 때, 헨리8세의

첫번째 왕비 캐서린의 시녀가 됩니다.



프랑스 궁정에서 생활한 탓인지

앤 볼린은 여느 시녀와는 확연히

다른 외모와 자태를 보여 주었지요.

헨리8세는 우아하고 도도한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왕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정부가 아니라 왕비가 되겠다는

야심을 집요하게 드러내었으며 아들을

낳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헨리8세는 그녀를 왕비로 삼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펴서 첫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만들고 영국국교회를 개창하여

교황의 간섭을 배제합니다.


왕비가 된 앤 볼린은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헨리8세의 사랑은 다른 여인 제인

시모어에게 향하고 있었습니다.


야속하게도 헨리8세가 앤 볼린을 내쫓는

방법은 간통죄였습니다. 다섯 사람과 간통을

했다는 죄였는데 그 중에는 자신의 친오빠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남자들은 모두

가혹한 고문 끝에 자백을 한 것이었으니

거짓자백이었던 것이죠. 결국 앤볼린은

천일 만에 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앤볼린을 처형한 바로 다음날 헨리8세는

제인 시모어와 약혼 했고 열흘 뒤,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아들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곧 사망했습니다.

에드워드 6세 역시 어려서 사망했습니다.


49세가 된 헨리 8세는 4번째 왕비를

맞이해야했습니다. 후보는 독일의 라인란트

지방에 있는 작은 공국 클레비스의 공주

앤이었습니다. 헨리8세는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오도록

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는데 실물을 보자

실망하여 결혼을 포기 했습니다.


클레비스의 앤  출처 위키피디아


앤은 국왕의 " 사랑받는 누이"라는 칭호를

받고 집 두채에 많은 돈을 받고 물러났습니다.

불명예스럽지만 실리를 챙긴 여인이죠.


5번째 왕비는 17세의 캐서린 하워드 였습니다.

이 어린 왕비는 옛 약혼자와 사랑행각을 벌이다가

처형당했습니다.


마지막 왕비는 이미 두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부유한 과부 캐서린 파 였습니다. 이즈음

헨리8세는 나이도 많은데다 각종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허리둘레가 54인치나 될

정도로 비대했고, 종기와 통풍 증세가 심했습니다.

과거 창시합에서 부상을 당한 후유증도 심했구요.

결혼 후, 4년 뒤 헨리 8세가 죽었습니다.


마지막 왕비인 캐서린 파는 왕보다 더 오래

살고, 결혼도 한번 더 했답니다.


캐서린 파 출처 위키피디아


여섯 왕비의 운명에 대해서 영국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소박맞고요, 목 잘리고요, 앓다가 죽었대요.

소박맞고요, 목 잘리고요, 무사히 살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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