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계몽주의에 대해 설명할 때,
난 이런 말을 꼭 해 주곤 해.
"무지하면 두려움이 커진단다.
캄캄한 밤중에 폐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 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무엇이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
공포감의 원인은 단지 모르기 때문이야"라고.
최근의 내 상태가 그러한 무지에서 온 두려움의
상태였던 것 같아. 여러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는
과잉 진료가 아닌가 하는 의심과
나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를 지배하니까 두렵고 우울했어.
병원에서 보내는 그 많은 시간동안
책도 읽을 수 없고, 드라마, 영화도 보기
싫었어. 그래서 우울감을 잊기 위해서
잠만 많이 잤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나의 병을 확실히 알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항암의 부작용까지 경험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캄캄한 터널 입구에 서있다가 이제 중간 쯤
들어와 터널 끝의 작은 빛을 발견한 기분이야.
이제 그 빛을 향해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빛이 보이는 이 터널의 중간 까지 나를 밀고
당기고 온 우리 딸들, 그리고 네 아빠.
너무 고마워.
나의 병을 알게 되기 바로 전, 네 아빠와 함께
하는 새벽 책읽기 시간에 읽은 책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였어.
마지막 부분에서, 노인은 여러 날 동안
사투를 벌였던 거대한 물고기의 머리와
앙상한 뼈를 해안에 버려 두고, 집으로
돌아와 침상에 몸을 던지고 곯아 떨어졌지.
아침이 되었을 때, 노인을 사랑하는 이웃의
소년이 상처투성이로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을 발견해. 그리고 울면서
노인이 마실 커피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지. 계속 울면서 말이야.
커피가 식을까봐 다시 데우고
노인이 깨었을 때, 노인에게 필요한
깨끗한 셔츠, 음식, 신문, 약 들을 가져
오겠다고 해. 그리고 "이제 우리 같이
고기잡이를 나가요"라고 말한단다.
네 아빠는 마치 그 소년처럼 날 돌봐주었어.
노인과 바다를 세 번 읽었는데, 읽을 때 마다
난 나를 노인과 동일시 하곤 했는데 말이야.
결혼 35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게 된 신기한 경험은 완치 되는 그 날까지
나의 에너지가 되고, 영원히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줄거야.
이제 내일은 2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날, 이제는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게는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의 한 권을 골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