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온 Jun 20. 2023

딸들에게 6

2차 항암치료


2차 항암치료를 끝낸지 나흘째인 오늘,

이제서야 좀 살만 하구나.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던 6월 12일부터

오늘까지 탈모 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 탈모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를 감을 때, 욕실 바닥을 뒤덮는

검은 머리카락들을 보면 공포감을

느끼기 까지 해. 누웠다 일어나면

하얀 배게 시트에 가득한 검은 머리카락,

집안 곳곳에 떨어진 검은 머리카락.


어제 밤에는 내가 쓰고 나온 욕실을

치우러 갔던 네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어.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떨고 있는 모습을 말야.

그때까지 나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울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강해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상하게도 네 아빠나, 너희들이

나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을 강하게

다잡게 된단다. 그래서 결심했지. 삭발하기로.


오늘 아침, 미장원에 가서 삭발했어.

아빠가 함께 삭발하겠다고 하는 걸 말렸어.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참 예민한 일인것 같아.

특히 한국인에게는.

단절, 결단, 저항 같은 의미가 부여되지.

그 행위에 깔린 공통적인 정서는 비장함이고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비장한 의식을 치르듯

긴장했던 것 같아.


그러나 아침햇살 처럼 가볍게 의식을

치르었어. 항암제가 나의 묵은 세포들을

없애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밤톨같은 머리를 쓰다듬으니 촉감이 좋아.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우울해 질 일도 없고.

너희들이 보내준 모자를 쓰고 화장을 하고

매일 산책을 할께.

작가의 이전글 딸들에게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