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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ul 29. 2020

영국의 역사 8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생각하면

이렇게도 비극적인 인생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죽어서, 아기 였을때

여왕이 되었습니다. 아기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대신하여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 (기즈의 메리)와

백작 제임스 해밀턴이 섭정을 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세력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

분쟁으로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인

기즈의 메리는 프랑스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는데

딸을 친정인 프랑스로 보내어 카톨릭교도로

자라게 했습니다.


따라서 메리는 프랑스에서 카톨릭 교육을 받으며

궁정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매우 아름답고

총명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리 스튜어트 출처 위키피디아


그녀는 프랑스의 왕태자 프랑수아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프랑수아 2세로

즉위하자 프랑스 왕비 까지 겸하게 되었지요.

여기 까지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남편인 프랑수아 2세가 즉위

1년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지요.


그녀가 프랑스에서 자란 기간동안, 스코틀랜드에서는

개신교파가 주도권을 잡은 이후였습니다.

카톨릭 귀족들은 메리 여왕이 돌아오자

스코틀랜드를 다시 카톨릭 국가로 만들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지요. 메리는 종교분쟁을 가라앉히고

분열된 귀족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신하이자

친척인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합니다.


단리경은 무척 방탕하고 문란한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개신교도들은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워

카톨릭 교도인 여왕을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단리경 출처Daum


개신교도 신하들은 모의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여왕에게는 절친한 친구이자 개인 비서인

데이비드 리치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신하들은 그가 여왕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증오심에 불탄 단리경은

임신 중이던 메리 여왕이 보는 앞에서 리치오를

살해하였으며, 신하들은 여왕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여왕의 나이는 23살이었습니다.


리치오가 죽자, 단리는 메리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해모의를 함께한 사람들을 고해

바쳤습니다. 여왕은 역모 사건의 수습을

보스웰 백작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여왕의 곁을

지키며 사건과 연루된 귀족들을 잉글랜드로

쫓아냈습니다. 메리 여왕은 곧 아들 제임스를

낳았고, 남편인 단리경은 올드 프로보스트의

저택에서 살게했습니다.


어느날, 메리 여왕이 남편이 있는 저택에

머물다 떠난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저택에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저택은

파괴되었고 단리는 목이 졸린 채 숨져있었답니다.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그렇지만소문이 퍼져 갔습니다.


살인범은 메리여왕과 보스웰 백작이라는 것이지요.

단리경이 죽은지 3개월쯤 후에 메리여왕과 보스웰

백작이 결혼을 합니다. 당시 측근의 말에 따르면,

보스웰 백작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라고

전합니다. 어쨌든 여론은 메리여왕에게 더욱

불리해져갔습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개신교파와 카톨릭파가

연합하여 메리 여왕을 폐위 시키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궁지에 몰린 여왕은 왕위를 어린

아들 제임스 6세에게 양위하고 잉글랜드로 가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게 됩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가까운 친척관계입니다.

메리 여왕의 할머니인 마가렛 튜더가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의 여동생입니다.

그러니까 사촌 관계이지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출처 위키피디아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식이 없으므로,

후계자는 메리 여왕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잉글랜드에는 권력에서 소외된 카톨릭

세력들이 메리여왕을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는 잉글랜드에서 20여년간

감금된 채로 지내다가 결국 카톨릭 세력과 함께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1587년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여왕이 되었고, 나중엔 프랑스

왕비까지 겸했던 행운의 여인이 종말에는

참수형에 처해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메리 스튜어트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은 후, 메리 여왕의 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여 제임스1세로 즉위합니다.


튜더왕조가 끝나고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된 것이죠.


제임스 1세 출처 위키피디아


메리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Mary, Queen of Scotland를

소개 합니다. 2019년에 개봉했는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은 조지 루크, 주연은 시얼샤로넌,

마고 로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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