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온 Jul 13. 2020

스페인의 역사 3

광녀 후아나


지난 두 번의 포스팅을 통해서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여왕과 아라곤 왕국의페르난도 2세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7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모두 일찍 사망하거나, 후손을 두지 못하고

오직 딸 후아나가 후손을 두었으며 유일한

왕위 계승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별명이 광녀입니다.

후아나는 일찍부터 정신 불안 증세가 있었는데

큰아들 카를을 낳은 후,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출처 Pixabay


그녀의 남편은 네덜란드에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필리프인데 아주 잘생겨서 별명이

미남공이었습니다.


후아나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무섭고도 끔찍한 사랑이었습니다.

아들 카를에 대한 애정도, 통치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오직 남편에 대한 집착만 있었지요.


이제 스페인은 사위인 필리프에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이사벨 여왕은 딸과 사위 문제로

폭삭 늙어버렸다고 합니다.


후아나는 둘째인 페르디난트를 친정인

스페인에서 낳았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떨어져 있었는데, 그 이후

그녀의 광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어느 여인과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여

머리를 밀어버리고 물어뜯고, 가위로

찔러대었답니다. 또 노예들의 얼굴을

도려내는 끔직한 짓을 저지르자 공포에 질린

남편은 그녀를 방에 가두어 버렸지요


그러다가 1504년 어머니 이사벨 여왕이 사망하자

후아나가 왕위를 물려 받았습니다.

하지만 통치 할 수 없는 상태이니 아버지인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2세가 섭정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중에 남편이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으로 오는

도중에 사망합니다. 독살설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후아나는 남편의 관에서 떨어지려하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왕실 지하묘에 묻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답니다. 사람들은 말렸습니다.


알함브라 궁전 출처 Pixabay


그라나다가 가장 남쪽에 있어서 교통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리고 필리프는 스페인 왕도 아니니 왕실 지하묘에 묻힌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어요.


하지만 후아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기어이 관을 끌고 그라나다 까지

먼길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든 관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또 자기 남편이 부활하여

돌아올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답니다.


출처 Pixabay


그 후 그녀는 수녀원에 평생 유폐되어 살았습니다.

씻지도 않고 옷도 안갈아 입고 그릇을 바닥에 놓고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스티야 왕국은 후아나의 장남인

카를이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카를 5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의 역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