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2세와 네덜란드의 독립
16세기 유럽은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충돌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며
카톨릭으로 국가를 통합을 하려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통치 지역인 네덜란드에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많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금서목록을 공포하여 국민들이
독일이나 스위스 종교개혁가의 사상을
접할 수 없도록 막았습니다.
펠리페 2세는 빌렘 (영어로는 윌리엄)을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파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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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세와 빌렘의 인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빌렘은 독일에서 태어나고, 부모로 부터
프로테스탄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11살 때 카를 5세의 스페인 제국
내에 있는 방대한 영토를 상속 받게 됩니다.
카를 5세는 그가 강력한 귀족이 될 것임에
틀림 없으니까 로마카톨릭에 적대적인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궁정으로
데려와 자라게 했습니다. 개인교사들을
두고 전쟁의 기술과 국가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카톨릭 신자로서의 소양을
쌓아가게 했으며 자신의 신하로 삼아
죽을 때 까지 곁에서 살게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렘과 펠리페 2세는 같은
궁정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온 친구 같은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펠리페 2세는 빌렘에게
네덜란드의 통치를 맡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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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Low Countries 저지대 라고도
불립니다. 땅이 바다의 수면보다 낮기 때문이죠.
거센 파도가 일 때 마다 온 나라가 물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은 진흙을 퍼 날라다가
거대한 흙벽들을 쌓아 바다와 싸웠습니다.
이곳에 총독으로 파견된 빌렘은 네덜란드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날이 갈 수록 펠리페의 종교 억압정책에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들도 펠리페2세의 강압적인
친 카톨릭 정책에 저항하기 시작했죠. 결국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카톨릭 교회들을
불태우고 성상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펠리페2세는 알바 공작을
파견해서 반란군을 진압하게 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네덜란드에 들어와
반란군의 두 지도자를 체포하고 처형했으며
네덜란드에 있는 빌렘의 영토를 몰수한다고
선포 했습니다. 알바 공작은 1천여명의
네덜란드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형했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함부로 죽이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무려 10년동안이나
이런 일이 계속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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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은 독일로 도망을 갔어요. 그곳에서 군대를
모집하여 배를 타고 네덜란드로 진격했습니다.
흙벽을 무너뜨리자 바닷물이 흘러 넘쳤습니다.
빌렘은 스페인 군대가 점령하고 있던 도시들을
포위했습니다. 알바 공작이 이끄는 군대는 결국
철수 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네덜란드 북부의
일곱개 지방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이것을 네덜란드 독립전쟁(1567-1648) 이라고
합니다. 80년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전쟁이 시작된
1567년 부터를 네덜란드 독립의 시작으로
간주합니다. 공식적으로 독립이 인정된 것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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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네덜란드는 대부분 스페인의 지배하에
남게 되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직까지도
대부분 카톨릭을 믿고 있지요.
네덜란드 독립전쟁 후 빌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덜란드의 국왕으로 추대 되었지만,
펠리페 2세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현재의 네덜란드왕 빌렘 알렉산더는 그의 후손입니다.
펠리페 2세는 카톨릭으로 자신의 제국을 통일하려다
크고 작은 많은 전쟁들을 치르었습니다.
그러느라 남아메리카에서 들어온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낭비하게 되었고 네덜란드를 놓쳐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