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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Oct 05. 2020

프랑스의 역사 2

카롤링거 왕조


카롤링거 왕조는 8세기에 메로빙거 왕조를

축출하고 프랑크 왕국의 왕위를 차지한 

가문 입니다. 카를 마르텔에서 시작하여 아들인

피핀, 그리고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 대제 시기에

전성기를 이룬 왕조입니다.


7세기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는 빠르게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지중해 지역에는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여 사방에서 침략하였습니다.


이슬람교는 7세기에 마호메트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 메카에서 창시되었습니다.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8세기 초, 아라비아와 중동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전 지역을 점령하고

남프랑스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이들에 의해

남프랑스에 대추야자, 샤프란등이 전해졌습니다.



샤프란 출처 픽사베이



샤프란 출처 픽사베이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왕들은 무능한 반면,

프랑크 왕국의 분국인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전 행정관이 귀족 계급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아우스트라시아는

프랑크 왕국의 북동쪽에 위치 해 있었는데

궁정 행정관이었던 카를 마르텔은 732년

스페인으로부터 쳐들어온 이슬람군을

격파했습니다. 투르와 푸아티에전투의

승리는 이슬람의 침입으로부터 크리스트교

문명권을 지켜낸 전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로마교황은카를 마르텔에게 로마교회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를 당부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자리잡은 롬바르드왕국이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욕심내며 교황을 위협하고

있었고, 비잔티움황제는 성상파괴령을 내리면서

세속적 권력과 더불어 종교적 권력의 수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를 마르텔은 교황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아들 피핀은 메로빙거 왕조 최후의 왕인

힐페리히 3세를 수도원에 유폐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751). 이에 교황은

피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세례를 주고

로마귀족이란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피핀 출처 위키미디어



그리고 프랑크족에게 피핀의 가문에서만 국왕을

선출하도록 지시하였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피핀은 교황의 영지에서 롬바르드족을 축출했고

그 영토 라벤나를 교황에게 바쳤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로마교황령입니다.


이로서 프랑크왕국과 교황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종교적 권위로서 피핀의

쿠데타를 정당화해주었고, 피핀은 비잔티움 황제와

이민족의 위협으로부터 교황을 

보호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 대제 시기에

프랑크 왕국은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고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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