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2세, 루이 9세 - 카페왕조
미약한 카페 왕조의 필리프 2세는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왕권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필리프 2세의 아버지는 루이 7세입니다.
그는 첫 번째 왕비로 아키텐의 알리에노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서남부의
광대한 영토를 지참금으로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신앙심이 강한 남편 루이 7세를
멸시했습니다. "나는 국왕이 아니라 신부하고
결혼했다"며 불평을 하곤 했답니다.
알리에노르는 곧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앙주 백작 앙리 플랑타주네(Henri Plantagenet).
황소처럼 굵은 목과 짧게 깎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정열적인 젊은이였습니다.
29살의 알리에노르는 루이 7세와 이혼에 성공한지
두 달만에 19살의 앙주 백작 앙리와 결혼했는데,
지참금으로 리무쟁, 가스코뉴, 페리고르, 아키텐을
새남편에게 주었습니다. 당시 앙주 백작 앙리는
어머니 마틸다로부터 노르망디 공국을,
아버지로부터 멘과 앙주를 상속받은 터라
이 결혼으로 프랑스 왕보다 더 넓은
영지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1154년 영국에서
헨리2세로 즉위하였습니다.
헨리2세의 영토획득 출처 위키미디어
영국 헨리 2세의 뒤를 이은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루이7세를 이어받은필리프 2세는
처음엔 별 충돌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러 가다가 다투게 되어
필리프 2세는 도중에 귀국하였습니다.
그리곤 영국왕의 영지를 빼앗을 궁리를 하였지요.
이에 리처드 1세가 프랑스를 쳐들어 왔다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 존이 왕위에 오르자 필리프 2세는
영국왕의 영지를 몰수하였습니다.
곧 프랑스 왕을 배척하는 동맹군이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의 존왕을 비롯한 프랑스의 대 귀족들이었죠.
필리프 2세는 교회와 브르조아의 지지에 힘입어
이들을 물리쳤으며 이 승리는
카페왕조의 왕권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필리프 2세의 아들 루이8세는 즉위 3년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이8세는 어린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스페인 출신의 왕비 블랑슈 드 카스티유가
루이 9세의 섭정을 맡게 되었지요.
그러자 귀족들은 섭정을 반대하면서 국왕의
선거권 부활을 요구했습니다.
귀족들의 압박 속에서도 섭정 모후는 아들
루이 9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매우 엄격하게 아들을 가르치고, 지나칠 정도로
간섭을 하여 루이 9세 부부는 모후의 감시를
피해서 만나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이 9세는 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잘 따랐습니다.
십자군 출처 픽사베이
십자군 원정에도 두번 참여하였는데, 관대하면서도
경건한 신앙심으로 유럽의 각 분쟁을 평화적으로
중재하여 프랑스의 왕위를 권위있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1270년에 사망한 루이 9세는 성 루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