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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Nov 22. 2020

유목의 전설

 글, 사진  이시백  / 책 리뷰


몇 년전 부터 사막으로 여행을 가자고


조르는 친구가 있다. 역사책만 보고 있는


내가 안쓰럽다고 휴식 삼아 보라고


그녀는 이 책을 보내주었다.



친구는 이 책의 저자와 함께 벌써


세 차례나 고비 사막을 다녀 온 바 있으니


사막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여행담에선


사막이 주는 원초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자유에 동반되는 외로움이


있는데 그것이 사막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저자 이시백님은 일년의 절반은 고비


사막에서 지내곤 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경험담과 해박한 지식이 아름다운


문장과 시원스런 풍광을 담은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다.



농경민족의 후손으로 살아온 나는 정착이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목민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때론 동경한다.



역사와 영화를 통해 보는 몽골의 거친


자연과 거친 성정을 경험자의 서술을 통해


읽으니 유목민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은


편견이며 몰이해였다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 바람, 불, 돌, 별, 모래,


개, 말, 낙타 등등이 유목민들에게 있어서는


그 가치와 의미가 사뭇 다르다. 몇 가지만


언급 해 본다.




난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 컵의 물을 버리는


것도 망서리게 되었다. 바로 이 장에서


소개된 저자의 경험 때문이다. 게르를


전전하다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여행자 숙소에 들렀던 경험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재밌고도 먹먹한 일화는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물에 대한 경외심은 물을 구하러 가는 거리와 비례한다....


비가 만든 호수들은 얼마가지 않아 하늘로 날아간다. ....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돌아가고 있었다....



p 13, 17







사막


고비란 황량하고 거친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비는 이렇게 말한다.


외로운가. 외로우라.


불행한 것은 외로움마저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이다.


고비를 홀로 걸어본 사람들은 그 지루하면서도


막막한 공간이 가져다 주는 대화를 기억할 것이다.


비어서 충만해지는 고비의 화법이다.


p34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사막의 매력에 빠지는지.


끊임없이 내 손, 눈, 귀, 머리를 바쁘게 하는


기계 문명과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로움은 자유로움을 주기에 나를 온전히


나로서 충만하게 할 그런 외로움이 아닐까.



나무


나무가 주는 위안을 알고 있다. 내게도


특별한 나무가 있다. 항상 그곳에 있기에 믿음직하다.


푸르른 나뭇잎으로 덮혀 있으면 푸르른대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으면 앙상한대로


늘 거기 있기 때문에 위안을 얻는다.



옛 사람들은 나무를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존재로 생각해 신성하게 여겼는데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방은 나무가 귀해


더더욱 신성하게 여겼다고 한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돌탑을 쌓는 우리네 풍습처럼 유목민들도


그렇게 하나보다. 그것을 오워라고 한단다.




눕지 않는 돌도 있다. 선돌이라 한다.


돌위에 돌이 선다는 것은 사람의 흔적이다....


유목민들은 돌 위에 돌을 쌓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오워의 기원이다.


p68





다른 점은 돌 뿐 아니라,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의


머리뼈나, 다친 다리를 도와준 목발, 외로움을 달래준


술병, 지폐도 끼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그 지폐에 손을 대지 않는데, 바람에 날라가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라고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가난해져라.


그러면 바람이 배달한 오워의 지폐를 받게 될 것이다.


p71





샤먼


몽골에선 샤먼을 '버'라고 한단다.


소련의 지배를 받던 시기, 스탈린의


종교 박해 때 "버"는 가장 먼저 핍박을 당해


수많은 버가 학살 당했다고 한다. 버를


핍박할 때 라마승을 앞세워 탄압했는데,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 라마승을 핍박하여


강제로 환속시키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었다고 한다. 거부하는 승려는 학살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저자는 화가이자 강신무인 버와의


만남과 이상한 경험을 소개한다.



장례


나는 최근 몇번의 장례를 겪었고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을까 생각을 했다.


도자기로 된 유골함에 꽁꽁 밀폐된


유골 가루를 생각하면 고인의 영혼을


가두어 둔 것 같아 속이 답답하다.


납골당에 그렇게 모셔놓고 때때로 찾아가


고인을 기리는 것은, 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자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함이 아닐까.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어찌하여 떠나는 자를 그런 방식으로


붙잡아두는 것일까.



이 책에 소개된 몽골의 천장을 "몽골"이라는


영화에서 본적이 있다. 칭기즈칸의 삶을 다룬


영화였는데 시신을 천으로 말아 달구지에


싣고 달린다. 달구지에서 떨어진 시체는


날개 달린 새, 네 발달린 짐승, 그리고


바람의 먹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문명사회의 현대인은 죽음마저도


자연과 멀다.




한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다는 욜린암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고 한다.


이 곳에 사는 말들은 신경질적이고 주인에게


대들 만큼 사납다고 한다.


이유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같은 길을 하루종일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말 주인들은 관광객들에게


"괜찮아"를 외치며 발버둥 치는 말의 등에


손님들을 태운다. 말들은 목적지를 돌아오다가


종착점이 다가 오면 속도를 내어 달려오곤 하는데


또 다른 손님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욜린암의 말들이 사나운 것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p139





이 책을 읽기 전엔, 단 한번도 관광객을 태우는


말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본위이고 이기적인가.



유목민의 삶을 읽으며, 결핍에서 오는 겸손함을


배운다. 인간의 역사는 편리함과 풍요함을 추구해


왔다. 지난 200 여 년간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은


우리에게 풍요함과 편리함을 주었고,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자연에 대한


파괴가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여러 징후를


생각하면, 잠시 멈추고,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바퀴처럼 멈추지 못하고 가속화되는 이 문명을


어찌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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