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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10. 2020

스페인의 역사 8

펠리페 2세의 결혼과 돈 카를로스


스페인의 절대군주 펠리페 2세는 4번 결혼을


하였습니다.



펠리페2세 출처 위키피디아



첫 번째 아내 였던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는 아들을 낳은지 나흘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아들 돈 카를로스는 말을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고 어려서부터 기이하고 잔인한


행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토끼를 산 채로 굽기도 하고 마구간에


있는 말의 눈을 찔러서 멀게하기도 하였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로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스페인 왕실에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돈 카를로스도 유전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펠리페 2세는 잉글랜드의 메리 1세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메리 1세가


난소종양으로 사망하자, 14살인 프랑스 공주


이자벨 드 발루아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와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의


앙리 2세와 카트린 드 메디치 사이에 태어난


맏딸입니다. 원래 펠리페 2세의 아들


돈 카를로스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죠.


돈 카를로스는 이 결혼에 항의하였고


새어머니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펠리페 2세는


둘 사이를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이자벨 드 발루아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출처 위키피디아



역사가들은 둘 사이에 의심할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하지만 후대에, 독일 극작가 실러는 이를 모티브로 희곡


"돈 카를로스" 를 썼으며 베르디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돈 카를로스"를 작곡하였습니다.


돈 카를로스의 배우자로 혼담이 오간 사람 중에는


오스트리아의 아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계속 미루어졌습니다. 펠리페 2세는 왕위 후계자인


돈 카를로스가 모든 면에서 정상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몇 번이나 이 결혼을 늦추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펠리페 2세와 아들의 사이는 점점


나빠졌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당할까봐


두려워 안에서 잠그는 자물쇠를 만들고, 각종 무기를


 숨겨두고, 외국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돈 카를로스는 고해 신부에게 아버지


펠리페 2세를 죽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져 아버지는 그를 방안에


가두었습니다. 감금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단식을 했다가 폭식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23세에 감금된 상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자벨 드 발루아도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엘에스코리알 궁전 (펠리페 2세 시기 지어진 궁전이자 수도원) 출처 위키피디아



펠리페 2세의 네 번째 결혼 상대 또한


아들과의 혼담이 오갔던 오스트리아의


아나였습니다. 그녀는 펠리페 2세의


외조카이기도 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렇게 근친혼을


많이 하였는데 그로 인해 많은 자식들이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정신병을 앓았고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스페인 왕실의 왕들의 초상화를 보면


모두 아랫턱이 돌출되어 있는데


근친혼의 폐해라고 합니다.



펠리페 2세에게 있어서 결혼은


유럽의 패권을 유지하고 카톨릭 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네 번째 왕비인


아나 드 오스트리아는 펠리페 2세가 그렇게도


바라던 후계자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4남 1녀를


낳았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7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생존한 단 한명의 아들이 펠리페 3세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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