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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11. 2020

스페인의 역사 9

스페인의 쇠퇴와 펠리페 3세


스페인의 전성기는 카를 5세 (카롤루스 1세) 와


펠리페 2세 시기입니다.



카를 5세는 유럽 각지에 걸쳐있는 자신의 영토를


돌아다니며 통치를 했습니다.


반면 아들인 펠리페 2세는 각지에 관리를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부터 늦게까지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는


방식으로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일 중독자라고 불릴 만큼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남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많은 금과 은이 들어왔으므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항상 자금난에 허덕였습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전쟁에 소모되는 비용


때문이었지요. 남아메리카의 금은이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곧 바로 화폐로


전환 되지 않기에, 급할 때는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높은 이자를 부담하면서까지 돈을 빌렸던 이유는


기일에 맞춰 돈을 갚지 않아 금융업자로 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스페인 왕이


사법제도에 관여했기 때문에 돈을 갚지 않으려고


일부러 금융업자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마드리드의 궁전 출처 픽사베이



그리하여 펠리페 2세 시기에는 돈이 들어와도


바로 이자로 다 나갈 정도였습니다. 돈을 제때


갚지 않아 채권자들이 항의를 하면 귀족작위를


주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또 세금을 올리고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적자를 메꾸려 했지요.



그리고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금, 은은 왕과


귀족들이 부동산을 사고 사치품을 구매하는데


사용하였을 뿐, 산업을 발전 시키는데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의


산업은 점점 뒤처지게되었습니다.



펠리페 3세는 이러한 상황의 스페인을


물려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를 무척


싫어하여 거의 모든 일은 신하인 레르마


공작에게 맡겼습니다.



대표

사진 삭제



펠리페 3세 출처 위키피디아



레르마 공작은 펠리페 3세의 어린 시절


시종이었습니다. 항상 곁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펠리페 3세의 신임을 얻고


신분상승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펠리페 3세가 왕이 되자 결국 공작의 작위를 받고


스페인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는 수도를 마드리드에서 바야톨리드로 옮겼는데


궁전을 옮기기전에 이미 바야톨리드의 


땅을 사 두었습니다.



수도를 천도한다고 하니 당연히 바야톨리드의


땅값이 올랐고 그는 엄청난 차익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가격이 내려간 마드리드의 건물과


땅을 사들인 후, 5년 만에 다시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겼습니다. 이번엔 마드리드의 땅값이 폭등했지요.


궁정 주변의 비싼 땅은 모두 레르마 공작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땅을 비싼 값에 펠리페 3세에게 팔았습니다.



바야톨리드의 궁전 출처 위키피디아



흔히 펠리페 3세 시기는 스페인의 평화시대라고


불리웁니다. 선대에 비해 전쟁의 횟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영토를 늘리는 것보다


지키려고 했으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평화협정을 맺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재정상, 전쟁을


할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레르마 공작 같은 부정부패의 화신이


전쟁을 피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는 모리스코 추방령이 있었습니다.


모리스코란,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스페인의


탄압정책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개종했을 뿐


실제로는 이슬람교도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레르마 공작은 1610년 부터 4년에 걸쳐


스페인의 모리스코를 모두 추방했습니다.


추방된 모리스코는 30만 명정도 였는데


레르마 공작은 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습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 출처 위키피디아



모리스코 추방은 스페인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주로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농촌에는


인구가 줄어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볼 사람들이


없어서 농촌 경제가 파탄이 난 것이었죠.


게다가 쫓겨난 모리스코는 해적이 되어 


스페인 선박을 공격하거나 해안가 마을을 


약탈하곤 했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레르마 공작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에게는


우세다 백작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다 보니


나중에 자신과 가문이 피해를 보게 될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끌어내리기 위해 다른 가문과 손잡고 1618년


아버지와 측근세력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랐지요.



그러나 1621년 펠리페 3세가 죽으면서 그의


권력도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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