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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Nov 24. 2022

마음이 배고플 때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

겨울철 안방 한켠에 비키니 옷장보다 큰 대형 가마니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다. 고구마 가마니다. 겨우내 일용할 간식과 양식이 되어줄. 졸지에 안방에서 자는 우리 식구들은 다닥다닥 붙어 잘 수밖에 없지만, 으레히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 불평하는 이는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 키보다 높은 곳에서 고구마를 꺼내려면 까치발도 모자르고, 베개를 두어 개 받치고 올라가야 한다. 산처럼 쌓인 고구마는 생으로도 먹고 찌고 튀기고 겨우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든다. 찬바람 맞으며 골목길을 뛰어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허기가 져서 기어코 고구마를 꺼내 아궁이에 던져놓는다.

당시에는 밥보다 원없이 아낌없이 먹었던 게 고구마 같다. 다른 간식이 거의 없었고 집에서 직접 수확한 거라 아낄 이유가 없었다.

가마니가 허리께쯤 낮아질 때면 달달한 고구마도 질리기 시작한다. 가마니 높이가 무릎쯤 내려오면 봄이다. 겨우내, 고구마는 뜨뜻한 아랫목에서 썩지도 않고 그렇게 우리 형제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찬바람 부는 겨울의 길목에서 그나마 허함 없이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 어쩌면 그때 원없이 먹은 고구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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